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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TVIEW] 웃고 있어도 웃고 싶어도

군대 코미디 <푸른 거탑>이 지닌 웃음 이상의 미덕

“매니저 출신 배우, 음주단속 적발”이라는 기사 제목을 보는 순간 불길한 기운이 뉴런을 타고 대뇌의 전두엽을 강타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tvN <푸른 거탑>의 최종훈 병장(a.k.a ‘말년’) 역을 맡고 있는 연기자 최종훈이 집 근처에서 대리운전기사를 보낸 뒤 500m가량을 운전해 주차를 하려다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최 병장이 영창에 가는 설정으로 잠시 하차하게 된다는 제작진의 발표에 오장육부로부터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휘몰아쳤다. 말년에 군기교육대도 아니고 영창이라니, 추억록 만들다 14박15일 영창 갔던 것도 모자라 또 영창이라니! 이런 제엔장! 이 나이에 군인 걱정을 하고 있다니 이게 바로 ‘곰신’의 마음… 아, 아닌가.

어쨌든 KBS <유머1번지> ‘동작 그만’ 이후 최고의 군대 코미디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푸른 거탑>은 요즘 가장 눈에 띄는 만듦새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3소대라는, 작지만 완결성있는 세계를 중심으로 인간이 서로의 내면을 바닥까지 보게 되는 무수한 순간들을 심각하게 그려낼수록 코믹함이 배가된다. 얼굴 주위에 검은 파리 떼를 몰고 다니는 말년 꼬장의 종결자 최 병장을 비롯해 대범해 보이지만 은근히 속 좁은 김재우 선임분대장(김재우), 육군 창설 이후 최대의 사이코라 불리며 후임에게 거울과 가위바위보를 시키는 김호창 상병(김민찬), 의외로 예쁜 여자친구가 있어서 선임들로부터 “합성이야!”라는 비난을 받은 백봉기 일병(백봉기), 자신이 전직 조폭이자 효도르의 스승이라고 뻥을 치고 다니는 정진욱 이병(정진욱), 그리고… 먹이사슬의 최하단에 위치하여 시어머니 다섯을 모시고 사느라 바람만 불어도 흠칫흠칫 놀라는 이용주 이등병(이용주) 등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은 조직 안에서 서열에 따른 처세와 생존 전략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게다가 자유를 박탈당하고 사회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결핍을 겪는 상황에서 라면 한 젓가락이나 화장실 가는 순서를 두고 한없이 치사해질 수밖에 없는 이들의 모습에서 인간이 의외로 쉽게 유혹에 무너지거나 절체절명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는 존재임을 느낄 수 있다. 야간 행군 도중 배가 아파오지만 자존심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오로지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부대로 한발이라도 빨리 돌아가기 위해 낙오하려는 동료를 일으켜 세워 부대 문을 향하는 김 상병을 향해 상관들은 훌륭한 전우애라며 칭찬하지만, 바로 그 순간 대장이 뒤틀리는 김 상병의 절박한 심정에 감정이입하다 보면 웃고 있어도 마음 한구석에서 측은지심이 흘러넘치는 것이다.

그래서 <푸른 거탑>을 보며 스탈린 시대 러시아 강제수용소의 일상을 그린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떠올린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이 원치 않았던 조직에 강제로 소속되어 사회에서의 나 자신을 잃고 ‘신병’으로 다시 시작해 ‘말년’에 이르기까지 폐쇄된 공간에서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부조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 버텨낼 것인가. 일상의 무료함을, 끝없는 작업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단것에 대한 갈망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솔제니친은 담담한 묘사를, <푸른 거탑>은 과장된 비장미로 가득한 코미디를 택했지만 웃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알겠다. 수많은 예비역들이 웃으며 목청 높여 떠들던 군대 무용담과 에피소드 아래 가라앉아 있었을, 외롭고 괴롭고 망연했던 순간과 기억들을. 말하지 않더라도 알아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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