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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TVIEW] 잊어버린 나를 찾아서

<일밤-아빠! 어디가?>, 다음 여행을 기다리는 이유

MBC 예능 프로그램 <일밤-아빠! 어디가?>.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솔직히 이 문장을 쓰면서 여러 번 망설였다. 카카오 스토리나 페이스북에 쉼없이 올라오는, 결혼한 친구들의 아기 사진에 일일이 칭찬하고 반응할 기력이 없어 아예 들어가질 않게 되는 마음과 비슷하면서도 입 밖에 내어 말하자니 어쩐지 조금 죄책감이 느껴졌다. 예쁜 아이는 예쁘지만 모든 아이가 예쁘다고 느끼지는 않고, 번잡스럽거나 시끄럽거나 떼를 쓰거나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를 보면 미간을 찡그리는 내가 마음 좁은 어른이라는 걸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아이가 아닌 지 오래고 가까이에도 아이가 없다 보니, 어른들이 암묵적으로 지키는 인간관계의 선을 마구 넘나들고 욕망과 감정에 지나치게 솔직한 데다 자신의 미성숙함을 전혀 숨기지 않는 그 존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MBC <일밤-아빠! 어디가?>(이하 <아빠! 어디가?>)가 첫 방송부터 <일밤>을 수렁에서 건질 코너로 주목받으며 인기를 끌었음에도 일부러 두어주를 안 보고 버틴 것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아이들의 재롱에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괜한 고집 때문이었다. 그것은 정말 쓸데없는 버티기였다. 성동일-성준, 김성주-김민국, 이종혁-이준수, 윤민수-윤후, 송종국-송지아 등 다섯 아빠와 아이들의 여행에는 다행히도 아이들의 개인기나 유명인 부모에 대한 폭탄 발언이 등장하지 않는다. 제1양육자인 엄마 없는 하늘 아래서 이들 부자 혹은 부녀가 1박2일 동안 어떻게 의식주를 챙기며 서로 교감하느냐가 <아빠! 어디가?>의 주된 내용인 덕분이다. 집 떠나 낯선 데다 TV도 장난감도 없는 환경에서 아이들이 함께 놀고 적응해가는 과정은 물론 아이와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어색하게나마 다정하게 말을 붙이는 아빠들의 노력은 사뭇 귀여울 정도다.

특히 방송 초반 비좁고 불편한 숙소에서 자게 될 때마다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울보’로 유명세를 떨친 열살 민국이가 여행을 거듭하면서 “그래도 저번 집보단 낫다”며 부쩍 느긋해진 모습을 보이고, 담력 테스트에서 영 자존심을 구겼음에도 닭장에 들어갔을 때는 누구보다 용감하게 맏이 노릇을 하자 ‘거 보라’며 여기저기 자랑을 하고 싶기까지 했다. 그리고 사소한 차이 하나에 억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세상에서 ‘치카치카’(양치질) 하는 게 제일 싫어서 온갖 핑계를 대고, 남의 집에 가서 맛있는 걸 보면 먹고 싶다고 엄마 아빠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한동안 나는 원래부터 어른이었던 양 잊고 있던 과거의 나를 발견한다. 나 역시 어른이 되면서 간신히 얻은 이성의 잣대로 아이를 재단하거나 자연스런 욕망을 절제시키는 과정에서 조금의 갈등도 없기를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가를 깨닫는 것이다. 또한 아이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치고 신발 끈을 매주고 머리를 빗기고 책을 읽어주는, 일상의 모든 순간에 얼마나 많은 부모의 노동과 정성이 배어 있는가에 새삼 놀라기도 한다.

물론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샘솟게 되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다만 <아빠! 어디가?>로부터 내가 배운 것은 이 어리지만 섬세한 인격체 고유의, 심지어 미성숙함까지 포함한 각각의 특성을 보다 자연스럽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아직 제 이름 석자를 제대로 못 써도, 귀찮을 때까지 쉬지 않고 질문을 퍼부어도,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좀 ‘오버’를 해도 뭐 어떤가. 본심을 슬쩍 아닌 척 포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제외하면 여전히 미성숙한 어른인 나 역시 아이들처럼 다음 여행을 기다리고 있다.

<아빠! 어디가?>가 남긴 명언

담력 테스트 장소인 외딴 폐가에 차마 들어가지 못한 민국이가 외로이 외친, “형은 무서운 걸 정말 무서워해!”. 아프니까 청춘이고 홍시 맛이 나니까 홍시라고 하는 것처럼, 무서운 게 무서운 건 진리 아닌가. 무서워 죽겠는데 안 무서운 척하는 건 허세일 뿐, 외로우면 나 외롭다고, 좋으면 정말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해보자. 계산없이 투명한 태도에서만 나오는 사랑스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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