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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올 어바웃 ‘아파트 불륜극’

JTBC 드라마 <네 이웃의 아내>

JTBC 드라마 <네 이웃의 아내>.

광고회사 팀장인 채송하(염정아)와 제약회사 부장 민상식(정준호)은 숙취해소 음료 광고건으로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밥벌이의 고단함을 공통분모 삼아 점점 가까워지고 어느덧 서로를 이성으로 의식하는 마음이 싹튼다. 그리고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직장 로맨스의 주인공이었던 두 사람을 각자의 가정으로 실어나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마침 송하의 남편인 외과의 안선규(김유석)와 과거 간호사였던 상식의 아내 홍경주(신은경)도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로 빈 음식 그릇을 주고받던 참이다. 같은 아파트, 같은 층에 사는 두 부부의 크로스 로맨스. JTBC 드라마 <네 이웃의 아내>에서 양쪽 부부가 한자리에서 조우하는 순간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루어졌다.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불륜은 드라마에서 적잖이 반복된 소재다. 결혼 이후 단절되는 로맨스와 성생활을 코믹하게 다룬 2003년작 MBC 드라마 <앞집 여자>에서는 같은 층의 이웃으로 살던 두 여자가 공교롭게도 모텔에서 마주치며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배우자에게 얻지 못하는 요소를 다른 남자를 통해 보충하면서 생활의 활력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앞집 여자와 친해졌다가 남편을 빼앗기고 홧김에 그 집 남편과 잠자리를 하는 2005년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위험한 이웃사촌’편은 시리즈가 거듭 주입해온 유한부인의 계율-네 이웃과 어울리지 마라-에 대한 복습이다.

주부의 일탈을 생활의 안정 이후에 찾아오는 공허로 풀어내던 아파트 불륜극의 흐름은 2012년 JTBC <아내의 자격>에서 국제중 입시를 준비하는 대치동 사교육 네트워크로 필터링되면서 전기를 맞는다. 윤서래(김희애)가 이사한 대치동은 아이의 선행학습 수준과 엄마의 관리능력으로 모든 평가기준이 재편되는 전쟁터다. 체험학습 위주로 아이를 돌봐왔던 서래는 아이가 무난히 국제중에 합격할 거라 낙관했으나 아이는 입시준비반 테스트에도 탈락하고, 아내의 교육관에 마지못해 동의하며 의식 있는 엘리트 행세를 해왔던 서래의 남편은 이를 계기로 교양의 껍질을 벗어던진다. 대치동 사교육계 안에서 동분서주하던 서래에게 찾아온 가슴 떨리는 로맨스와 이혼은 전쟁터에서의 탈출을 의미한다. 하지만 샌드위치 가게 창업으로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던 <앞집 여자>의 시절은 이미 지났으며, 돈을 벌기 시작한 서래 앞에는 교양을 뒤집어쓴 또 다른 몰상식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2013년 당도한 <네 이웃의 아내>는 아파트 불륜극의 거의 모든 요소를 담고 있다. 마주보는 두집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욕망하고, 상대편 배우자를 통해 생활의 염증을 해소하려 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어느 한쪽의 책임을 묻는 흐름을 타지 않는다. 말처럼 쉽지 않은 전개가 가능했던 건 각자의 세계가 대단히 충실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일터는 판타지를 삭제한 직장 드라마처럼 비정하고, 가정 내 억압이 쌓이는 디테일은 현실적이며 섬세하다. 이렇게 쌓아올린 주인공 네 사람을 연결하는 건 가정과 일터 사이의 수직이동을 담당하며, 두집간의 수평이동을 지켜보던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몫이다. 이들의 로맨스는 엘리베이터를 통해 긴장과 충돌을 빚는 주거 공간 스릴러로 돌변한다. 그렇다면 엘리베이터의 역할과 시선이 닿지 않는 장소는 어떨까? 아파트는 엘리베이터를 대신할 특파원을 투입한다. 따분한 일상 속의 여흥거리로 이들 두 부부를 관찰하며 때로 한 장소에 몰아넣는 짓궂은 동네 주부들. 그들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아파트의 일부분이다.

홍경주의 비밀

모든 캐릭터 중 가장 눈길을 잡아끄는 건 비밀이 많은 경주다. 클래식이 흐르는 정갈한 부엌에서 아침상을 준비하던 그녀는 갓 지은 밥 냄새로 행복을 음미하는 듯하다가 바로 침을 퉤 뱉는다. 남편의 밥그릇이었다. 반찬값을 체크하거나 “당신이 결정해”라는 말 뒤에서 은근히 자신을 압박하는 남편과 살며 쌓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경주는 살인사건이 벌어진 불길한 집에 이사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마루에서 발견한 피 얼룩을 유심히 관찰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입김을 불어 닦는 그녀의 모습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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