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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떡밥으로 끝나지 말아주길

범인 암시하는 복선이 거듭 등장하는 <신의 선물-14일>에 바람

SBS 드라마 <신의 선물-14일>

복선 역할을 하는 단서나 진상을 감추고 일부만 드러내는 트릭을 세간에선 ‘떡밥’이라 부른다. 보는 이의 기대와 호기심을 가불해다 쓴 떡밥은 해명이 정교하지 못하면 자연히 실망을 부른다. 그런데 대체 어쩔 셈인가 걱정스러울 정도로 많은 떡밥을, 그것도 보란 듯이 던지는 드라마가 있다.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시간을 거슬러 운명을 바꾸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 SBS 드라마 <신의 선물-14일>이다.

시사프로그램 작가 김수현(이보영)과 그녀의 딸 샛별(김유빈)은 ‘데스티니’라는 이름의 카페에서 폴라로이드를 찍고, 여주인에게 ‘조만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되며,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 끝나는 운명’이라는 불쾌한 예언을 듣는다. 이를 발단으로 카메라는 이들 가족의 주변 인물과 사건 사고 하나하나에 의미심장하게 머문다. 애인과 다투던 수현의 후배작가, 사형제 폐지 입장을 밝힌 수현의 남편 인권변호사 한지훈(김태우)과 그에게 오물을 던지는 피해자 유가족. 학교 앞 문방구 아저씨부터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샛별이 유괴사망사건을 계기로 사형 집행을 지시하는 대통령까지. 자살하려던 수현을 구하고 14일간 그녀를 돕는 전직 형사 기동찬(조승우) 역시 말끔하지가 않다. 샛별의 죽음 앞에서 온갖 사람들이 다 미심쩍고, 심지어 죽은 아이는 샛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낚시꾼들이 던진 떡밥으로 수질이 나빠진 저수지처럼, <신의 선물-14일>의 초반부는 징조와 암시가 빚어낸 의심으로 혼탁하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시청자를 낚아올리는 목적치고는 떡밥이 너무 많다. 작가의 욕심에 휘둘리는 불쾌감이 드는 데다, 아이의 죽음을 놓고 던져대는 떡밥을 물불 안 가리는 모성으로 돌파하는 조잡한 이야기라면 윤리적인 문제를 지적할 수도 있다. 한데, 이쪽의 시야만 혼탁한 것이 아니다. 카페에서 예언을 들은 그때부터 수현의 일상 또한 징조와 암시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의 죽음을 막지 못한 수현은 방송국에서 마주친 첫사랑에 잠시 정신이 팔렸던 걸 자책하고, 공부만 달달 볶아대느라 아이의 고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을 후회한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맹목의 어머니는 시간을 되짚는 동안 뭘 해야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14일을 얻은 수현은 샛별이 죽은 시간 축과 다른 길을 만들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아이가 죽기전 입고 있던 옷가지를 버리고, 좋아하는 일을 함께하며, 아이를 납치했다고 방송국에 전화한 연쇄살인범의 예정된 살인을 저지하고, 그가 죽어야 딸이 산다는 집념으로 그를 추적한다. 그녀는 육체적 고통과 공포를 초월해 돌진하지만, 같이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에서 사라진 샛별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시작부터 쉽지 않은 이야기다. 지금 또 다른 용의자를 쫓고 있는 수현이 이전의과오를 바로잡거나 무언가를 해내는 보상으로 아이를 다시 살릴 수 있다면, 아이를 잃고 사는 이들에겐 그 무언가에 대한 허망한 자책이 깊어질 테고,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면 그것도 너무 아픈 이야기니까.

문득 연쇄살인범이 노리던 여자를 구하려는 수현이 “지금 가면 죽어요!”라고 제지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아무리 다급해도 그런 말로 설득이 되겠나 싶어 답답한 한편, 그 외침이 마치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내뱉는 탄식-죽음의 징조가 드리운 이에게 닿을 수 없는 무력한 경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이 이야기가 다루는 죽음이 징조와 암시가 있어도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라면, 수현이 되돌아간 14일이 후회와 자책을 더는 시간이든 뭐든 간에 더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 α

샛별의 친구들

떡밥을 회수하며 드러나는 진상은 과거 연쇄살인사건의 유가족이 사형수의 아이를 납치해 인질로 삼았던 ‘무진 사건’에 가닿는다. 그 아이는 동찬의 조카이며, 아파트에서 일하는 할머니를 기다리다 샛별과 친구가 된 장애인 소년 기영규(바로)다. 구멍 난 양말에 낡은 슬리퍼를 신고 추위에 떨던 영규는 샛별과 수현이 챙겨준 양말과 운동화를 신고, 친엄마가 남긴 빨간 스웨터를 입게 되었다. 그리고 샛별의 또 다른 친구 은주(조은형)의 행방도 묘연하다. <신의 선물-14일>은 진범 찾기 게임 말고도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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