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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알고 먹으니 더 맛있네

KBS 푸드 퀴즈쇼 <밥상의 신>

“어쩜 저렇게 평화롭게 들어가니. 정말 아름답다.”

개그맨 김준현의 입으로 들어가는 상추쌈을 아련한 눈길로 바라보던 노사연의 말이다. 동감이다. 흰쌀밥에 더덕불고기를 올려 쌈을 싼 김준현은 우악스럽게 입을 벌리지 않으면서도 큼지막한 상추쌈을 솜씨 좋게 밀어넣는다. 밥알 한톨 흘리지 않았다. “조용조용 먹어야 많이 먹어도 뭐라 안 해요.” KBS 푸드 퀴즈쇼 <밥상의 신> 중 한 장면이다.

덩치 큰 사람이 뭔가 먹을 때마다 핀잔을 주는 것을 자기 사명이나 재치쯤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넘치는 세상. 한편에선 이성의 끈을 놓은 사람처럼 먹고, 괴성과 신음으로 맛을 표현하는 이른바 ‘먹방’ 예능프로그램이 대성황이다. 먹방 예능의 목적은 식욕을 돋우는 걸까? 시청자를 대신해 절제의 허리띠를 풀어놓은 연예인의 일탈을 서비스하는 걸까? 각자 입맛이 다르듯 음식을 다룬 예능프로그램을 한데 묶어 속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손톱에서 떨어진 인조보석이 들러붙은 새우살을 클로즈업하거나, 게 껍질에 찔려 피가 난 손으로 발라낸 게장을 들이대며 왁자하게 웃고 떠드는 모 종편 프로그램의 그로테스크함을 떠올리면 먹방 예능은 생각보다 먼 곳까지 와버린 듯하다.

굳이 따지자면 <밥상의 신>은 식상한 쪽이다. 파일럿 1회부터 정력, 회춘, 면역강화, 장수 등의 주제를 제철 식재료의 효능과 연관시키는 퀴즈 형식은 <비타민>의 코너 ‘위대한 밥상’이, 용포를 입고 상투에 놋숟가락을 꽂은 왕 설정의 메인MC 신동엽과 고정패널인 박은혜는 <대장금>을 연상케 한다. 출연자들이 정답을 고민할 때는 <TV쇼 진품명품>의 음악을 깔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상의 신>을 보면서 입맛을 다시는 이유가 있다. 각 지역의 진미를 소개하는 것만큼 더 맛있게 먹는 법과 간편하게 조리하는 법, 몰랐던 상식을 전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삼겹살은 몇번 뒤집어야 가장 맛있는지 실험하고, 손질이 귀찮은 더덕 껍질을 쉽게 까는 묘수나, 시래기와 우거지의 차이를 알려주는 식이다. 그렇게 조리과정과 식재료의 특성을 이해하면 머릿속으로 조합할 수 있는 맛의 영역은 훨씬 넓어진다.

‘어머니 손맛’이나 ‘비법 양념’으로 눙치지 않고 ‘주꾸미 다리는 20초, 머리는 2분 데친다’ 등 비교적 정확한 가이드를 내놓고 정보의 이유를 충실하게 부연하려면 당연히 제작하는 쪽의 품이 더 들게 마련이다. 봄만 되면 TV홈쇼핑을 비롯해 지상파, 케이블, 종편채널의 맛 기행 프로그램, 아침, 저녁 정보 프로그램, 기타 등등에서 알이 꽉 찬 간장게장을 쥐어짜는 형편. 아이템 중복을 피할 수 없다면 쓸모 있는 정보로 신뢰를 높이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전략이다.

+ α

신동엽이 맛보던 그 고기

가정에서 질긴 우둔살을 부드러운 스테이크로 먹는 방법? 정답은 포크로 촘촘하게 찔러 근육을 끊고 올리브유를 스며들게 하는 거란다. 채널A <먹거리 X파일>에서 수많은 바늘로 찔러 우지를 주입한 가공육을 고발하던 장면과 원리는 같다. 고기에 뭘 주입하는지 그 성분만 파고들어도 될 것을 주삿바늘과 음산한 배경음악으로 공포를 조장하는 방송이 무시했던 조리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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