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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말과 행동이 다를 때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유혹>을 시청하는 재미

공금을 횡령한 동업자 대신 투자자에게 멱살 잡히고도 ‘그 선배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무기력하게 말하는 남편. 담보로 내준 홀아버지의 아파트까지 넘어갈 판국에 ‘당신 죄수복 입는 게 더 무섭다’라고 할 정도로 남편을 믿고 의지해온 아내. 퇴로가 없는 불행 앞에서 현실감각이 마비된 듯 위로만 주고받던 차석훈(권상우)과 나홍주(박하선) 부부는 홍콩에서 돈을 구했다는 동업자의 연락에 안도하며 비행기를 탄다. 하지만 그곳에서 이들을 기다리는 건 자살한 동업자의 유서와 유류품뿐. 홍주는 보험금으로 아버지의 집을 지켜달라는 유서를 쓰고 바다에 뛰어들고, 마침 해변을 산책하다가 홍주를 구한 여자는 눈물의 포옹을 하는 부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다음날 석훈에게 기묘한 제안을 한다. “사흘에 10억. 제가 차석훈씨의 시간을 사겠어요.”

부부를 시험하는 억대의 유혹. 그다지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SBS 드라마 <유혹>은 여기에 잦은 우연과 작위적인 인연까지 더한다. 10억원을 제안한 그녀는 과거 석훈을 면접에서 탈락시켰던 호텔 체인의 사장 유세영(최지우)이고, 그녀의 라이벌 회사의 대표 강민우(이정진)는 홍주와 여러 번 마주친 인연으로 홍콩에서 데려온 혼외자녀 로이(조휘준)의 입주보모를 제의한다. 여기에 세영의 여동생과 홍주의 남동생이 사랑의 기류를 형성하고, 홍주의 남동생은 흥신소 일을 하는 선배의 부탁으로 세영의 변호사 뒤를 캔다. 손바닥을 벗어나지 않는 좁은 세계. 멜로에 기업 인수전이 결합한 이야기가 고작 읍면 단위 스케일이니 종종 실소가 터진다.

눈감아주기 어려운 단점에도 불구하고 <유혹>에 관해 쓰는 이유는 캐릭터의 대사와 행동 사이의 여백과 괴리가 빚어내는 흡입력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사람의 말과 행동 사이엔 생각이라는,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인물의 내면을 모조리 대사로 옮기고 들어줄 상대가 없을 땐 혼잣말까지 보태는 드라마의 캐릭터는 의외의 행동을 할 여지가 줄어들고 보는 쪽의 기대도 감소한다. 반면, <유혹>은 이전의 행동 패턴과 다른 말, 말과는 다른 행동이, 드러나지 않았던 마음의 소용돌이를 짐작게 하며 인물에 살을 붙인다.

말해지지 않는 공백은 각자의 콤플렉스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성적인 뉘앙스를 풍겨놓고 정작 3일간 일만 시킨 세영이 계약의 세세한 규칙을 세워놓고 돌연 허물어버리거나, 거래에 응하고 놀림감이 된 석훈이 계약 종료 뒤에 도리어 세영의 시간을 사서 아내와 하지 못한 자전거 타기를 하는 장면. 아이 앞에서 반사적으로 앉아 눈높이를 맞추는 등 배려와 이해가 몸에 밴 홍주가 ‘당신 마음 다 알겠어’라고 말하면서도 어떤 갈등의 상황에선 머리를 구덩이에 박는 타조처럼 외면하는 까닭. 궁금하지 않은가?

+ α

또 만났네

주중 미니시리즈에 재회 커플이 붐이다. 권상우와 최지우는 <천국의 계단> 이후 10년 만에 한지훈 작가의 <유혹>에서 재회했다. 또 한지훈 작가의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이준기와 남상미는 <조선총잡이>에서 다시 만났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는 장혁과 장나라가 <명랑소녀 성공기> 이후 12년 만에 다시 커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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