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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TVIEW] 결국 사랑과 이별은 둘 사이 이야기

KBS 드라마 <연애의 발견>

남의 연애 이야기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누누이 말해왔지만 마이클 더글러스와 맷 데이먼이 출연한 <쇼를 사랑한 남자>는 모처럼 마음에 든 멜로드라마였다. 70년대 미국의 인기 피아니스트 리버라치와 시골 청년 스콧 토슨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권태기를 지나 ‘더럽게’ 이별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가 좋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이거였다. 이야기를 굳이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주변인이 오지랖 부리거나 사고 치지 않아서, 출생의 비밀이나 운명의 장난이 끼어들지 않아도 두 사람의 감정과 관계가 변해가는 게 결국 그 둘 때문이라서.

나이를 먹을수록 사랑을 둘러싼 현실의 문제들이 점점 뚜렷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에 대한 감정과 관계에 대한 판단 역시 분명해진다는 생각을 한다. 고민할 건 하나다. 나의 사랑으로 무엇을, 혹은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는가. 상대의 싫은 버릇을 참아 넘기고, 사소한 무언가를 포기하고, 자잘한 것들을 양보할 수 있다면 아직은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서로를 위해 감수할 수 있는 폭이 절대적으로 좁아지는 순간 이별은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연애의 발견>에서 한여름(정유미)이 5년 사귄 남자친구 강태하(문정혁)와 떠난 여행에서 크게 싸우고 이별을 선언하는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부모가 격렬히 반대하거나, 알고 보니 원수의 집안이라거나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에 대해. 단지 내 몸의 휴식이 상대에 대한 관심보다 우선이기만 해도, 식탁 너머 앉아 있는 이의 입가에 묻은 소스가 더이상 귀여워 보이지 않기만 해도 사랑이 끝나는 건 금방이다. 게다가 두 사람의 끝이 언제나 동시일 수는 없다. 그래서 헤어지자며 큰소리쳤던 한여름은 내 친구 A양이 그랬듯 발신자를 숨겨가며 전화 걸어 매달리고 장문의 원망 문자를 보내며 지울 수 없는 ‘흑역사’를 써댄다. 새벽 2시 무렵 뜬금없이 “자니…?”라는 메시지를 보내곤 한다는 도시민담의 주인공이자 미련의 상징이 되어버린 구(舊)남친처럼.

물론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끝난 연애 이후 한여름이 능력 있고 매력 있는 새 남자친구 남하진(성준)을 만나고, 또 우연히 재회해 일로도 엮이게 된 강태하로부터 또다시 고백을 받게 되는 것은 세상 모든 구여친을 위한 판타지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연애의 발견>은 터무니없는 오해와 극단적 사건들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대신 사랑에 조금씩 섞여 있는 허세와 이기심, 우유부단함 따위를 포착해 연애에 따르는 보편적 감정들을 들여다본다. 그래서 더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일 수밖에 없는 묘한 권력관계가 드러나거나, 지금보다 어리고 반짝이는 시절을 공유했던 사람과의 기억이 현재를 잡아채는 순간을 지켜보며 생각한다. 가끔은 남의 연애 이야기도 재미있구나.

+ α

제3의 길을 찾아서

저돌적인 강태하와 자상한 남하진, 각기 다른 매력의 두 남자 사이에서 누굴 택할 것인가 부질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면 대안은 가까운 곳에 있다. 능력 있고 다정하고 의리 있으며 무엇보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하우스메이트 도준호(윤현민)! 화장실까지 함께 써야 하는 평생의 반려자로 딱 아닌가. 문제는 이런 엄마 친구 아들이 없거나, 있어도 나에게 관심이 없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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