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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성장판 닫힌 세계에서 일과 사랑 찾기

tvN 드라마 <잉여공주>

난파선에서 주운 포크로 머리를 빗으며 인간세계를 상상하던 인어 이야기도 옛말. 요즘 인어는 방수팩에 넣은 스마트폰으로 <별에서 온 그대>를 시청하고 트위터 유명인을 팔로한다. 그렇게 인간계의 문물을 즐기던 18번째 인어공주 에이린(조보아)은 미남 셰프 권시경(송재림)에게 반해 한강을 얼쩡거리고, 요트에서 요리 프로그램 촬영 중이던 시경은 참치 꼬리지느러미를 닮은 의문의 지느러미에 놀라 미끄러진다. 에이린은 물에 빠진 시경과 딥키스를 나누는데, 일은 여기서부터 꼬인다. 에이린이 그간 군침만 삼켜왔던 시경의 탱탱한 힙을 주무르는 동안 물에 뛰어들어 그를 건져올린 이는 역시 시경을 노리고 있던 신입사원 윤진아(박지수)다. 에이린의 키스가 시경의 생명연장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고, 심지어 시경은 생명의 은인에게 식사대접으로 빚을 갚는 현실적인 왕자님이니 동화 속 사랑도 자연히 물음표를 그린다. tvN <잉여공주>는 육지로 올라온 인어가 ‘잉여’가 되는 이야기다.

지느러미를 발로 바꾸는 물약을 먹고 시경이 있는 클럽에 찾아간 에이린은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낙담하고 뒤늦게 후회한다. 어쨌거나 물거품으로 사라지지 않으려면 100일 안에 ‘진정한 사랑’을 얻어 진짜 인간이 되어야 하고, 사랑을 하려면 그를 만나야하며, 그를 만나려면 먼저 그가 있는 회사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 정리하면, 사람으로 살기 위해선 인어도 취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동화 같은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잉여공주>가 보여주는 취업난과 젊은이들의 정서는 의외로 현실적이다. 뒤늦게 취업전선에 뛰어든 고시 장수생 도지용(김민교)이 긍정과 인내의 보상으로 취업과 성공의 해피엔딩을 약속하는 자기계발서에 푹 빠지는 장면을 보자. “이거 읽으면 희망이 생겨. 한마디 한마디가 뼈가 되고 살이 될 거다.” 지용의 말에 미대출신의 3년차 취업준비생 이현명(온주완)은 이미 다 겪어봤다는 듯 가볍게 웃으며 대답한다. “형, 우리 이미 성장판 닫힌 지 20년 됐어.” 현명의 말은 성장판이 닫힌 세계에서 자기계발서와 유사한 방식으로 고된 ‘청춘’을 응원하는 드라마들을 향한다. 개인의 성장과 그에 따르는 성공의 인과관계를 만들고 성장 판타지를 재생산하는 것에 이만한 냉소가 또 있을까. 극중 ‘능력은 있으나 쓸 곳이 없고, 일은 하고 싶으나 자리가 없는’ 존재로 설명되는 잉여는 개인의 성장으로 돌파할 수 없다.

사랑을 찾는 인어든, 직장을 구하는 잉여든 간에 다시 쓰기 시작한 이야기는 그들이 딛고 선 지금의 조건과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개인적인 바람으론 현재의 고통을 사랑과 성공의 후일담화하는 ‘성장통’부터 조목조목 따져줬음 좋겠다.

+ α

진정한 사랑

포털 사이트에서 ‘진정한 사랑’을 검색하는 인어공주 에이린의 곁에는 이미 그 사랑을 얻어 인어세계에서 두 번째로 사람이 된 안마녀(안길강)가 있다. 아침엔 세차, 낮에는 택배, 저녁엔 다코야키 트럭에서 일하는 기러기 아빠로 진정한 사랑 이후를 말하는 그의 비밀 하나 더. 인어 시절엔 ‘하반신이 사람이고 상반신이 생선’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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