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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그가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는 이유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적적한 새벽에 채널을 돌리다 일본 선술집을 순례하는 프로그램에 멈췄다. 팔각기둥 형태의 갈색 컵을 발견한 출연자가 연신 ‘쇼와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어릴적 중국집에 가면 미지근한 보리차를 담아 내오던 바로 그 컵이었다. 얼마 전엔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트위터에서 ‘쇼와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그리워할 물건 50선’을 링크한 것을 보고 덩달아 향수에 젖기도 했다. 변신필통과 로켓펜슬, 보석캔디, 물탱크 속의 작은 고리를 수압으로 밀어올리는 장난감 등 대부분 낯이 익었다. 나야 한국인이니 일본 천황의 연호로 시대구분을 할 이유가 없고, 버블경제 붕괴 이전의 좋았던 시절로 쇼와 시대를 그리워하는 일본인의 정서와도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수년의 시간차를 두고 한국에서도 유행한 그맘때의 문물을 구경하다보면 유년기 추억의 원조를 발견하는 기묘한 기분에 빠져들게 된다.

어쨌건 지금은 <TV도쿄>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시즌4가 한국의 케이블 채널인 채널J에서 동시방영되는 시절이다. ‘시간이나 회사생활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배가 고프면 혼자만의 식사를 하는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마쓰시게 유타카)는 잡화를 수입하는 개인 무역업자다. 각지의 의뢰인을 찾아가 미팅을 하고 실제로 영업 중인 지역 식당에서 신중하게 메뉴를 골라 식사하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 나 역시 밥 먹을 때 반찬 삼아 보는 드라마인데 가끔 그의 ‘먹방’ 바깥으로 생각이 미칠 때가 있다. ‘저가 소품가게와 해외 인터넷 주문이 일상인 세상에서 신통하게도 일은 끊이지 않는구나.’

버블경제가 종결된 90년대 중반에 비정기로 연재되던 동명 만화가 2012년에 와서야 드라마로 제작된 까닭에 고로의 캐릭터에도 그만큼의 시간차가 존재한다. 과거 일본의 평범한 샐러리맨과 달리 조직이나 가정에 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고로의 직업은 근 2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선 ‘저게 가능한가?’ 싶은 의문을 남긴다. 어쩌면 가게나 개인을 상대로 특이한 외국 소품을 중개한 수수료로 먹고사는 고로 자체가 돈이 쌓이고 수요가 있던 일본 버블경제 시대를 향수하게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시즌4 10화에서 재떨이가 놓인 테이블과 낡은 의자, 100엔 게임기가 비치된 ‘레스토랑 아톰’을 둘러보며 쇼와 시절의 다방을 연상하는 장면이 있었다. 옆 테이블의 택시 기사들과 섞여서 일하는 남자의 기분을 한껏 내며 포식한 고로는 전철이 끊겼다는 소식에 기사들이 황급히 자리를 뜨자, 텅 빈 식당에서 맛나게 담배 한대를 태운다. 문득, 원작 만화의 고로와 생김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길을 가던 남자가 떠올랐다. <시마 과장> 시리즈의 시마 코사쿠는 승진 행렬을 멈추고 <학생 시마>로 돌아갔단다.

+ α

술안주 만화도 있습니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가 시간이나 회사에 구애받지 않는 식사에서 최고의 만족감을 얻는 남자라면, 만화 <술 한 잔 인생 한 입>은 퇴근 후 한잔하는 낙으로 사는 평범한 회사원의 이야기다. 구운 꽁치 한 마리를 놓고 살점은 맥주와, 씁쓸한 내장은 따뜻한 일본주로 나눠서 먹는 이와마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술과 안주 생각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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