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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서늘한 현실

드라마 <어셈블리>의 필리버스터와 현실의 필리버스터

2009년 ‘미디어법’ 날치기 즈음의 실제 국회를 희화화한 SBS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2013)은 의장 직권상정으로 언론법을 밀어붙이려는 여당과 이를 막으려는 야당의 대치상황 스케치로 시작한다. 여당은 장소를 바꿔 기습 표결한다는 가짜정보를 흘려 날치기를 시도하고, 야당의원은 당사 캐비닛에서 해머를 챙겨 회의장 문을 부수러 달려간다. 다수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을 막고자 만들어진 ‘국회선진화법’ 이후 시점인 KBS 드라마 <어셈블리>(2015)에서는 이전 같은 본회의장 점거나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국회의원 진상필(정재영)이 국회법에 의거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으로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처리를 지연시킨다.

진상필이 임시국회 종료까지 25시간을 홀로 버텼다면, 현실의 필리버스터는 ‘테러방지법’ 표결을 지연하려는 야당의원들의 릴레이로 엿새를 넘긴 참이다. 미디어법 당시 날치기를 막으려고 의장석까지 점프했던 ‘파이터’ 의원은 드라마에서 봤던 필리버스터가 현실이 될 줄 몰랐다며 <어셈블리>를 인용한다. 현실과 드라마가 서로를 참조하는 흥미로운 광경, 내친김에 <어셈블리>를 다시 보다가 서늘하게 실감한 것이 있다.

국회방송 채널에서 생중계하는 진상필의 필리버스터가 실시간 채팅창이 붙은 인터넷 중계로 확장되는 드라마의 전개는 지금 상황과 똑같다. 이어서 지상파 ‘KBC’ 뉴스는 가치판단을 배제한 정보 중심의 띠 자막을 달아 국회 필리버스터 상황을 보도하고, 여론이 달아오르자 특별 생중계도 편성한다. 본방송 당시엔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무심하게 넘겼던 보도 시스템이 세상에, 실제 상황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는 기분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