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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의 만화가 열전] 그 속에 다른 세상이 있었다
오승욱(영화감독) 2016-04-21

데자키 오사무,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넣은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의 거장

1981년 5월의 어느 날. 나는 고등학생 주제에 뻔뻔하게 생맥줏집에서 프라이드 치킨을 앞에 놓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내 앞에는 점심시간에 피아노 레슨실로 숨어들어 나를 위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의 세 번째 악장을 헤비메탈처럼 연주를 해 나를 숨넘어가게 만든 친구가 앉아 있었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하운드 독>을 부르며 엘비스의 성적 자극이 넘쳐나는 춤을 춰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고,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는 당시 소장한 것만으로도 국가보안법에 걸렸을 소련 멜로디아 레이블에서 나온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독주곡을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을 찬양한 노래라며 들려주었다. 그는 딥 퍼플, 블랙 사바스 같은 하드록에 빠져 있던 나에게 음악의 바다가 얼마나 넓고 매력적인지 온몸으로 보여준 친구였다. 그는 들라크루아가 그린 쇼팽의 초상화를 보여주며 쇼팽의 불안과 히스테리를 이렇게 잘 표현한 그림은 없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과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종류의 이야기가 장래에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친구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자신의 손이 너무 작아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기는 틀린 몸이라고 짐짓 어른처럼 말을 해서 나를 홀딱 반하게 만들었고, 나의 그림이 너무 어두워 친구들 중 내 그림을 제일 좋아한다고 해서 뭘 그려도 어둡기만 해서 콤플렉스였던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이 대단한 친구를 앞에 두고 맛있는 생맥주와 프라이드 치킨을 먹던 나는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었다. 술집의 냉장고 위 선반에 놓인 텔레비전에서 만화영화 한편이 방영되고 있었다. 컬러였다. 이전 해 겨울, 방송사에서는 컬러로 방송을 시작했지만 우리집에는 아직 컬러 텔레비전이 없었기에 처음 보는 컬러 방송이었다. 동생들이 컬러 텔레비전을 사자고 어머니에게 졸라대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별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술집의 컬러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는 만화영화에서 뿜어내는 색깔이 너무나 아름다워 내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친구의 목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화면에서 소년과 아기 표범이 해변을 달리고 그들 뒤로 코발트색 바다와 물비늘이 반짝였다. 소년의 기쁨이 넘쳐나자 화면은 바로 정지되고, 죽죽 내리그은 힘찬 펜 선으로 그린 채색화로 그림이 바뀌었다. 만화영화 속에 한장의 그림이 있었다. 만화영화는 항상 움직여야 했다. 달랑 한장의 그림을 그려놓고 움직이는 척 꼼수를 부리며 시간을 때우거나 앞에서 한번 쓴 장면을 또다시 사용하는 한국 만화영화를 보고 투덜거린 기억이 있는 나는 움직이지 않는 그림을 당당하고 멋지게 사용하는 만화영화에 입이 벌어졌다. 게다가 화면은 온통 울트라마린, 프러시안 블루, 코발트블루, 아름다운 블루의 향연이었다. 게다가 추악한 해적, 음흉한 배신자 외다리 실버가 너무나 멋지게 그려져 있어서 더욱 놀라웠다. 만화영화의 제목은 <보물섬>이었다. 방영이 끝나고 나서야 친구의 말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친구는 자신의 말보다 만화영화에 정신이 팔린 나에게 삐치고 말았다.

누구도, 무엇도 말해주지 않던 시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우리집은 괴상한 동네로 이사를 했다. 그 동네에는 헌책방도, 만홧가게도, 튀김집도, 시장도, 술집도, 극장도 없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없었고, 도로에는 노선버스 몇대와 승용차들이 드문드문 다니고 있었다. 죽은 개가 떠내려 오는 개천도 없었고, 간밤에 술에 취해 굴뚝을 부여잡고 얼어죽은 술주정뱅이를 보았던 좁은 골목길도 없었다. 앙상한 어린 나무에 각목으로 보호대를 만들어놓은 가로수가 띄엄띄엄 있었고, 누런 먼지가 날리는 공터와 비닐하우스, 그리고 아파트밖에는 없었다. 하루가 지나면 공터였던 땅은 파헤쳐져 공사장이 되었고, 어느 날인가 보면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시끌벅적한 번화가였던 신촌과 홍대 앞을 쏘다니던 나에게 그곳은 시골도 아니고 도시도 아닌 괴상한 동네였다.

그런 곳에서 살면서 고등학생이 된 나는 헌책방도 만홧가게도 가지 않았고,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면 친구들과 어울려서 보거나 여자친구와 보았다. <소권> 같은 <취권> 짝퉁 영화를 보러 갈 때에만 혼자였는데 그 이유는 아무도 그런 영화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세상도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늦가을의 아침. 등교하는 버스 안에서 대통령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를 들은 이후, 대기업에 취직해 가문의 영광이 된 삼촌은 자주 우리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중요한 부분이 검열에 걸려 찢어지지 않은 <타임>과 <뉴스위크>를 어머니의 직장을 통해 구입해 달라고 부탁했고, 80년 5월에는 더욱 심하게 어머니를 보챘다. 어른들도 고등학생인 나만큼이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해 봄날, 텔레비전에서는 서울역 앞 도로를 가득 메운 시위대를 매일 보여주었다. 어느 날인가는 하굣길에 한남 교차로 앞에서 버스가 멈춰선 채 갈 줄을 몰랐다. 도로에는 탱크가 서 있었고, 하얀 완장을 차고 총을 멘 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길을 막고 있었다. 한참을 도로 위에 서 있던 버스는 멀리 이태원 길로 돌아서 잠수교를 건너 나를 집 앞에 내려주었다. 그해 봄날의 늦은 밤, 창밖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깬 나는 조심스럽게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그것은 내가 보면 안 될 것이란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달빛과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철모와 탱크. 통행금지여서 고양이 새끼 한 마리 지나다니지 않는 고요한 도로에 열을 맞춰 어디론가 이동하는 군인들이었다. 탱크의 캐터필러 굴러가는 소리와 군화 소리가 음산한 저음으로 낮게 울렸다. 너무 놀라 창문을 닫고 얼굴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 비슷한 시기, 비가 내리는 어느 하굣길에 버스는 성수동을 지나 성동교 앞 사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성수동 공장지대쪽에서 스크럼을 짠 내 나이 또래의 어린 여공들이 비를 맞으며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내가 탄 버스 뒤에 바짝 따라붙은 그녀들의 머리카락과 푸른 작업복은 비에 젖어 있었다. 그녀들의 볼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젖은 머리카락과 옷에서는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버스 안의 어른들은 혀를 차며 그녀들을 욕했지만, 나는 비슷한 나이 또래인 주제에 편하게 공부하고 버스를 타고 있는 것이 미안해서 그녀들을 더이상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사이 그녀들은 버스의 속도에 밀려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학교 밖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어른들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야기해주지 못했다. 5월 중순의 어느 날. 점심시간에 농구대 아래에서 시간을 보내며 하찮은 농담을 하던 우리의 이야기가 텔레비전에서 본 광주의 폭동에 대해 옮겨갔다. 누군가는 폭동자 중에는 북한 간첩들이 있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을 욕했다. 그때 한 친구가 우리를 향해 아주 심각한 얼굴로 “씨발. 광주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고 학교 밖의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니는 다른 세계의 학생이었다. 그는 폭동이 아니라고 했다. 종종 가장 믿음이 안 가는 자의 입에서 진상이 밝혀지는 순간이 있다. 그의 말은 우리를 얼어붙게 만들었고, 우연찮게 우리 옆에 서 있던 국사 선생님은 진상을 알려달라는 우리의 눈길을 피하고는, 친구에게 “허! 그 자식” 하고 고개를 숙이고는 교무실쪽으로 가버렸다. 그때 우리는 친구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모두 모른 척하거나 무서워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 시간 광주에서 우리 또래 소년들은 교련복을 입고 총을 들고 있었다. 어른 중 누구도 우리에게 광주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를 윽박지르는 어른이 대부분이었고 그중 그나마 괜찮았던 어른은 우리가 물어보면 우리의 시선을 외면하거나 먼 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고등학생 시절이 흘러갔다. 집에 일찍 돌아오는 날이면 어느새 우리집에도 놓이게 된 컬러 텔레비전 앞에 앉아 <보물섬>을 보았다. 자신이 믿었던 세상에 배신당한 짐을 보며 감정이입을 했는지도 모른다.

“실버, 나를 기억하나요?”

70년대 말 일본에서는 만화영화란 단어가 사라지고 ‘아니메’란 단어가 새롭게 태어났다. 아니메 전문 잡지가 생겼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그들은 그렇게 이름지었다. 90년대, 내 동생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나오자 열광했고, 나의 동참을 원했다. 내가 시큰둥해하자 영화를 볼 줄 모르는 놈으로 치부하고 다시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도미노 유시요키의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도 훌륭하고 <아키라>도 훌륭했지만 나는 데자키 오사무가 감독한 애니메이션을 더 좋아했다.

고등학생 때 수업을 땡땡이치고 숨어든 미술실 안에는 이미 먼저 자리잡은 땡땡이 일당이 있었다. 중학생 소녀들이었다. 그녀들은 두편의 만화책을 돌려가며 읽고 있었는데, 만화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는 중학생 소녀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같이 땡땡이친 고등학생 오빠라는 연대감을 호소하며 그녀들이 보는 만화를 한구석에서 빌려보는 은혜를 입었다. <올훼스의 창>과 <들장미 소녀 캔디>였다. 그때 보았던 만화가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소녀만화였던 나는 <에이스를 노려라> 애니메이션을 보고 놀랐다. ‘70년대 중반 가지와라 잇키가 유행시킨 터무니없는 소년 근성물이 소녀만화에까지 영향을 미쳐 아름다운 소녀만화의 세계를 오염시킨 것 아냐?’ 하면서 보다가 ‘데자키 오사무는 격렬하게 움직이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그리고 싶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군!’ 했다. 소년만화와는 다르게 은하수가 흐르는 눈동자를 가진 길쭉길쭉한 여자와 남자들이 테니스 코트에서 기다란 팔과 다리를 격렬하게 움직인다. 중요한 시합을 위해 주인공 오카 히로미가 테니스 코트에 들어선다. 그녀의 테니스화가 코트의 흙을 밟는다. 짧은 순간 푹신한 흙의 감촉이 테니스화의 바닥을 통해 전해진다. 그렇게 테니스의 세계로부터 도망치려 했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고 테니스를 하기 정말 잘했다고 코트의 흙이 주인공을 반기는 것 같다. 소년들의 근성 스포츠만화와는 다른 감수성의 세계였다. 데자키 오사무는 원작 만화에서 모두가 다 대단하다고 알고 있는 것들 중에서 자신만이 주목한 것에 좀더 포커스를 맞춰 데자키 오사무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낸다.

<보물섬>은 어떤가? 짐과 실버가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을 보자. 소설에서는 실버를 두려움에 떠는 외다리 해적이라 확신한 짐이 실버의 술집으로 찾아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술집 안에는 해적 검둥개가 있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 커다란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외다리 사나이가 등장한다. 실버다. 그는 검둥개가 짐을 보고 도망치자 술값을 떼어먹고 도망치는 놈이 있다고 소리를 지르며 외다리로 그를 쫓다 포기하고 만다. 술값을 안 낸 비열한 녀석이라며 검둥개를 욕하는 실버를 보며 짐의 의심이 서서히 녹아내린다. 결정적인 것은, 그가 술값을 떼어먹고 도망치는 놈을 못 잡은 한심한 외다리이며 자신은 늙어빠진 바다표범이 되었다면서 너털웃음을 터트릴 때, 짐도 실버를 따라 같이 커다랗게 웃는 것으로서 짐이 의심을 거두고 실버에게 호의를 갖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데자키의 애니메이션에서 둘의 만남은 한층 격렬하다. 의심을 하는 짐은 실버의 술집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않고 골목에서 감시한다. 그때 해적 검둥개가 실버의 술집으로 들어간다. 짐의 의심은 확신으로 변한다. 역시 자신의 판단이 옳았던 것. 실버를 해적이라 확신하는 짐의 등 뒤로 포도에 나무막대기가 부딪치는 일정한 소리가 난다. 짐이 뒤돌아보면 엉덩이 아래부터 몽땅 사라져버린 외다리 사나이가 서 있다. 실버다. 실버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칼을 든 검둥개와 추격전을 펼친다. 실버의 주먹도 대단하지만 검둥개의 칼솜씨도 만만찮다. 검둥개의 칼날을 막아내다 실버의 지팡이가 부러지고, 검둥개는 도망친다. 실버는 자신에게 한방 먹인 놈을 끝까지 외다리로 껑충껑충 뛰어 쫓아간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짐의 의심은 사라진다. 게다가 지쳐 쓰러진 실버가 어린 짐에게 손을 내밀어 부축을 해달라고 하고, 술집까지 짐은 실버의 지팡이가 되어준다. 짐은 거대한 몸의 사내를 부축하고 땀을 줄줄 흘리며 술집을 향해 간다. 짐은 자신의 손이 그의 등에 닿았을 때의 따뜻한 감촉을 마음에 새긴다. 짐은 그런 따뜻한 등을 가진 사나이는 악당이 아니라고 믿는다. 실버가 우정의 표시로 술을 권하자 짐은 냉큼 받아 마시고는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린다. 짐은 절대로 죽은 아버지를 대신할 아버지를 얻은 것이 아니라 수평적 관계의 친구를 얻은 것이다. 짐은 나의 실버를 사귄 것이다. 소설에는 없는 애니메이션 <보물섬>의 라스트. 스무살 청년이 된 짐이 어느 항구의 술집을 찾는다. 그는 이제 믿음직한 뱃사람이다. 술집 한구석이 떠들썩하다. 그곳에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중년의 실버가 술내기로 팔씨름을 하고 있다. 한눈에 실버를 알아본 짐은 실버에게 팔씨름을 청한다. 짐도 훌륭하지만 아직도 실버에게는 안 된다. 내기에 진 짐이 술 한잔을 사고 그 술을 맛있게 들이켠 실버가 몸을 돌려 술집 출입문 앞에 선다. 짐이 소리친다. “실버, 나를 기억하나요? 짐입니다.” 실버는 고개를 살짝 돌려 나지막이 웅얼거린다. “과거 이야기 하지 마라. 방금 마신 술맛 떨어진다.” 그러고는 술집을 훌쩍 나가버린다. 짐을 슬쩍 바라보며 웅얼거릴 때 실버의 얼굴은 명연기였다. 자신의 악행을 포함한 온갖 회한과 반가움. 그리고 비웃음. 그것이 실버의 얼굴에 녹아 있다. 데자키 오사무가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내일의 죠>도 대단하다. 데즈카 오사무의 무시 프로덕션 저예산과 살인적인 마감 일정 때문에 만들어낸 궁여지책이었던, 정지 화면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려 하던 얕은 수작을 그는 대담하게 적극적으로 활용해 애니메이션의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내고 인물들의 감정까지 극대화한다. 저예산 프로덕션 출신의 위대한 승리였다.

90년대 말. 그의 야심작 <백경전설>이 <NHK-BS1>을 통해 방영되었다. 당시 불법 위성 안테나로 1회부터 보았던 나는 흥분하고 말았다. 실버가 에이허브로 출연하여, 우주 속을 떠도는 거대한 악마 모비딕을 쫓는다. 에이허브는 수배 중인 우주 해적이고, 뭔가 특수임무를 부여받은 안드로이드 듀오가 모비딕 추격의 일원이 된다. 이 장대한 드라마는 회를 거듭할수록 초라해졌다. 인기가 없어서였는지, 초반부의 암울한 우주의 풍경은 사라지고 온갖 성희롱이 난무하는 저질 개그로 한회, 한회 근근이 이어져가다가 26회에 서둘러 종영하고 말았다. <아키라>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안노 히데아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세상에서 포악하고 비열한 악당 사나이들을 멋있게 그리려 했던 그의 <백경전설>은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실버는 짐의 실버이기도 하지만 1980년대 초 소년이었던 나의 실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