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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잘 먹는 소녀들> 소녀 아니면 이모님?

이런저런 ‘먹방’에서 걸그룹 멤버를 보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다. 먹는 프로그램에 나왔으니 열심히 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JTBC는 아예 걸그룹만 따로 모은 토너먼트 형식의 야식 먹방 <잘 먹는 소녀들>을 내놓았다. 김준현처럼 유별난 대식가와 경쟁할 필요 없이 또래끼리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쪽이 더 보기 편해야 할 텐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인터넷 사전 생방송은 여성이 먹는 모습을 품평하는 기본 포맷과 심야에 네 시간 동안 먹게 하는 가학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궁금해서 본방송을 시청했다. 우리만 문제 삼지 말라는 듯, 출연자 자료화면마다 타 방송 캡처 화면과 연예뉴스 제목을 잘라 붙였는데 ‘소녀’들이 잘 먹는다고 뉴스에 오르내렸던 메뉴는 전투식량, 개불, 닭발, 번데기, 산낙지, 삭힌 홍어 등이었다. 얼굴이 흉해보이도록 입을 크게 벌린 장면, 39초 만에 흡입 따위의 문구를 모아놓으니 방송과 연예뉴스가 무대 밖의 걸그룹에게 무엇을 강요하고 착취하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소녀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골라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잘 먹는 소녀들>은 시종일관 “소속사에 허락”이나 “대표님이 며칠 굶겼나봐요” 등 관리와 통제하에 있는 상품으로서의 ‘소녀’를 당연시하고, 애교나 성적인 어필을 경쟁하도록 부추겼다. 그렇게 먹방에 나와 열심히 일한 ‘소녀’들의 미래는 밝은가? 판정단으로 출연한 가요계 선배 이지혜는 양념곱창이 탈까봐 걱정되어 불을 줄여주러 내려갔다가 “20년 동안 곱창집을 운영한 이모님” 같다는 농담 소재가 되었다. 한숨이 나왔다. 소녀 아니면 이모님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