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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한 이유>
이다혜 2022-08-29

그렉 이건 지음 / 김상훈 옮김 / 허블 펴냄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다움’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에 SF만큼 적합한 장르가 또 있을까 싶다. 그렉 이건의 소설집 <내가 행복한 이유>를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표제작인 <내가 행복한 이유>는 이 한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 이 책을 읽는다 해도 아깝지 않을 작품.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12살 소년이 악성 뇌종양을 앓으면서 시작한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상상하는 이들의 예측에 어긋나는 이 이야기는 소년이 우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이유로, 루엔케팔린이라는 물질의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탓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지속적인 행복감에 젖어 있다는 전개로 이어진다. 그리고 뇌종양의 치료를 마치자 행복감은 말끔하게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모든 종류의 기분장애와 강박증을 비롯한 감정 상태만이 남게 된다.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조차 종양과 함께 사라진 까닭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치료법이 등장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나’와 같은 또래의 4천명의 남성들에서 비롯한 신경망에 다중 노출되며 총천연색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모든 사람들의 취향이 ‘나’에 반영되어 있어,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만. 이제 ‘나’는 자기다움이 무엇이며 그것이 존재하기는 하는지 생각을 시작한다. 그러다 한 여자를 만난다.

과학(기술)적으로 엄밀한 SF 작품들을 일컫는 하드 SF를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는 그렉 이건의 단편집 <내가 행복한 이유>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내가 되는 법 배우기> <적절한 사랑>을 비롯한 여러 수록작에서 ‘나-되기와 나-찾기’라는 테마는 1인칭과 3인칭으로 반복해 등장하는데, 가능성의 꼼꼼한 탐구는 가장 감상적인 순간에조차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상황을 돌아보게 한다. 인간을 구성하는 신체적이고 생리학적 요소들을 인간이라는 개념, 인간됨의 감정과 연결지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렉 이건의 글은 감탄스럽다. 허블에서 해외 SF를 소개하는 워프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