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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완결
2002-07-04

괴물은 잠들었다, 과연?

지금 내 앞에는 <몬스터>라 이름붙인 18권의 기록이 있다. 이 괴물은 지난 몇년 동안 나와 친구들의 심장을 움켜쥐고 긴장의 땀과 공포의 피를 짜내고 또 짜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며, 완결될 때까지는 절대 쫓아다니지 않겠다며 포기를 선언한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기회가 왔다. 드디어 그 괴물이 하얀 침대에 누워 잠이 든 것이다. 이제 좁은 책꽂이에 쌓아온 그 기록을 꺼내 처음부터 읽어가자. 한 장면 한 장면을 되새기고, 칸과 칸 사이의 복선을 들추어내고,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비밀의 퍼즐을 맞추어가자.

나는 <몬스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과 약력을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추리 장르의 핵심은 인간이다. 누가 죽느냐, 누가 죽였는가가 중심이다. 거기에 어떻게 죽였는가가 덧붙여지는 것이다. 양심에 따라 소년을 살려낸 대가로 악의 한가운데로 떨어진 천재 외과의 덴마를 중심으로 수십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몇배가 되는 시체들을 만나야 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읽으며 10개의 인디언 인형이 될 사람들의 이름을 적거나,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객실 도면에 승객들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차라리 전지 몇장을 벽에 붙여놓고 빅토르 위고나 조정래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정리하는 작업에 가까워 보인다.

누가 죽고 누가 죽였는가

이제 핵심에서 벗어난 인물들부터 없애나가도록 하자. <몬스터>의 중간중간에는 사건의 기둥 줄기에서 벗어난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주로 덴마가 연쇄살인의 혐의를 받고 유랑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다. 시골 마을 의사인 슈만과 그가 돌봐주는 페트라와 하인츠 모자, 덴마를 위협해 수술을 받으려는 GWE 테러리스트, 살해범 로버트의 부모, 빈민가의 베트남계 소녀 의사 등은 덴마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면서 장편의 긴장감을 해소시켜준다. 이 이야기들은 TV시리즈 <도망자>나 데즈카 오사무의 <블랙 잭>을 연상시키게도 하는데 좀더 직접적으로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전작인 <마스터 키튼>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에바의 정원사나 안나의 피자집 주인이며 전직 킬러인 롯소 등도 이러한 성격의 인물군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 다음엔 몇 무더기의 시체들을 정리하자. 어린 요한이 죽여나간 양부모들은 의외로 큰 의미가 없다. 그들은 요한이 징검다리처럼 밟고 지나간 존재이다. 더불어 요한의 사주에 의해 벌어진 무차별한 살인과 그 살인자들도 요한의 악을 드높이기 위한 장식물이므로 따로 한 바구니에 담아 치워두자. <몬스터>에는 ‘누가, 왜, 누구를 죽였나’라는 추리 퍼즐 이상으로 다양한 사건들을 통한 주제의 변주가 펼쳐진다. 물론 그것이 이 만화를 풍부하게 만들고 있지만, 자칫 혼란스러운 물결을 타다보면 비밀의 본질에 다가가기 어렵게 된다. 덴마의 전 약혼녀 에바나 고아 디터 등도 작품 전편에 큰 역할을 하는 조연들이지만, 비밀의 핵심에서는 벗어나 있다.

이제 쌍둥이 요한과 안나를 중심으로 미스터리의 인물들을 모아보자. 고아원 ‘511 킨더하임’의 원장인 비아만, 소아정신과 관찰자 할트만, 바이에른의 흡혈귀라 불리는 대부호 슈베르트 등은 비밀의 문을 하나씩 여는 데 도움을 주는 중간자의 역할이다. 511 킨더하임에서부터 시작된 음모의 실체는 볼프 장군, 게데리츠 교수, 안경 낀 남자, 그리고 제4의 남자로 정리되고, 이들 악행의 제1선에서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는 로베르토의 정체는 터키인 거주지를 방화한 ‘베이비’ 같은 일개 졸개는 아닌 듯하다.

연쇄살인을 쫓는 지적 모험

추적과 격투가 이어지지만 덴마와 우리는 단순한 행동이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많은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지적인 모험에서도 우리는 과감하고 끈질겨야 한다. 요한은 왜 의미없는 연쇄살인을 벌였을까? 511 킨더하임에서는 어떤 실험이 벌어졌던 걸까? ‘도와줘! 내 안의 몬스터가 폭발할 것 같아’라는 요한의 메시지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요한은 두 사람이에요’라는 안나의 말은 다중인격을 말하는 걸까? 요한은 왜 안나처럼 여장을 하고 돌아다닐까? 애초에 두 사람이 하나의 존재였던 것일까? 나는 수수께끼의 리스트를 따로 작성하여 하나하나 답을 기록해가기로 했다. 물론 많은 독자들이 눈치챘듯이 요한과 안나를 경악하게 하는 동화 <이름없는 괴물>이 비밀을 벗길 가장 중요한 열쇠다.

이제 우리는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덴마를 따라가는 것이 가장 편하다. 범죄 심리학자 루디와 라이히와인 박사, 군사전문가 베른하르트 등의 조력자들이 뒤를 받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추적자들이 있다는 것이 이 만화의 더 큰 즐거움이다. 컴퓨터 같은 계산과 범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일체감으로 접근하는 랑게 경부, 왕성한 행동력과 과거를 되찾으려는 절실함으로 달려드는 글리머는 서로 다른 길로 지옥의 입구에 도달한다. 그리고 모든 비밀을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안나야말로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인공일지도 모르겠다.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중 www.sugarsp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