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클래식과 개그의 협연 <노다메 칸타빌레>
2002-08-14

제멋대로,노래하듯

스포츠만화의 남성 영웅들만큼이나 만화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있다. 최근 애장판으로 새 모습을 보인 미우치 스즈에의 <유리 가면>과 뒤늦게 정식 발간된 아리요시 교코의 <스완>이 대표적이다. 오직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을 억누르는 모든 콤플렉스를 벗어나는 소녀, 발레계의 미운 오리 새끼였지만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 최고의 프리 마돈나가 되어가는 소녀. 분명 그들은 열혈의 시대였던 1970년대의 상징이지만, 바로 지금도 그녀들의 뒤를 잇는 열렬한 예술혼의 소유자들이 있다. 소다 마사히토의 <스바루>가 춤을 위해 쏟아내는 땀방울의 양은 <스완>의 그것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유리 가면>의 전투적인 연극에 비해 야치 에미코의 <내일의 왕님>이 보여주는 무대는 무척이나 차분해 보이지만 그 열정의 파동은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우리 손에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향해 달려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노다메 칸타빌레>. 그러나 이젠 확실히 다르다. 장담한다.

방귀 뿡뿡, 절대 푼수인 여주인공

유명 피아니스트의 아들이자 세계 최고의 지휘자를 꿈꾸지만 비행공포증 때문에 유럽으로 떠나지 못하고 있는 치아키 앞에 피아노과 여학생 노다메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저 피아노가 너무 좋아요. 언젠가 꼭 최고의 무대에 서고 말 거예요. 도와주세요”라고 여자아이가 매달려야 할 것 같은 분위기지만,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쓰레기장인지 자취방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역시 쓰레기와 유사할 정도로 지저분하게 살아가는 노다메는 피아노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별다른 목표도 없이 그저 피아노과 교수 앞에서 방귀 뿡뿡 끼는 만담이나 즐기는 신세다. 자존심 강한 왕자병의 치아키이지만 그녀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곤 왠지 무언가 가르쳐주고 싶은 욕망이 불끈불끈 솟는다. 그럭저럭 협연도 하면서 노다메의 재능이 조금씩 드러나지만, 그녀는 그냥 재수좋게 ‘미소년 하나 주웠다’고 생각하며 그와의 연애에 헛물만 켠다. 고고한 클래식 음악과 대책없는 개그가 기묘하게 결합된 신종 클래식 개그로맨스만화가 등장한 것이다.

만화가인 니노미야 도모코의 전작인 <천재 주식회사>나 <그린>을 읽은 독자라면 그녀의 캐릭터 스타일을 쉽게 눈치챌 것이다. 남자는 능력 좋고 잘생긴 왕자님, 여자는 연애 외에는 별다른 목표도 없고 실수투성이인 절대 푼수. 그들이 이렇게저렇게 얽혀 옆에서 구경만 해도 유쾌한 웃음을 펑펑 터뜨리게 만드는 환상의 콤보 개그를 펼치는 것이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함과 그것을 억지로 감추려는 귀여운 내숭의 대조를 보여준다. 노다메에게 어떻게든 제대로 된 피아노를 가르쳐보려는 치아키에게 그녀는 “사랑의 ABC는 다음에 해요”라고 당치도 않는 말을 하고, 치아키는 어느 순간부터 이 괴상한 여자애의 식사까지 책임지는 처량한 신세가 된 자신을 발견한다.

잘생긴 총각에게 반해 무작정 시골에 내려와 살게 된 여대생의 이야기인 <그린>이 농촌이라는 소재를 그저 배경으로만 깐 느낌이 강하다면, <노다메 칸타빌레>에 와서는 클래식이라는 소재에 좀더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듯한 모습은 보인다. <그린>의 여주인공은 편안하고 솔직한 성격에 연애에 대한 열정만 강렬하다면, 노다메는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상당한 음악적 재능이라는 무시 못할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린>의 커플은 농촌 생활에서 소박한 행복을 만들면 되지만, <노다메 칸타빌레>의 커플은 좀더 높은 음악적 목표를 향해 내달려야 한다.

예술을 향한 열정, 무겁지 않게

치아키와 노다메가 과연 어떤 식으로 음악적으로 성장하게 될지는 상당히 미지수다. 괴짜 바이올리니스트를 조연으로 등장시키고 치아키가 지휘자 지망생이라는 설정은 치아키를 중심으로 한 어떤 ‘팀’을 구성해나갈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제목에서부터 노다메 한 사람을 부각시키고 있는 모습은 결국 그녀의 천재성을 발휘하기 위해 치아키가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도 보인다. <유리 가면>의 ‘보라색 장미의 사람’ 하야미나 <스완>의 알렉세이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두 작품에서 남녀주인공의 로맨스가 극의 긴장을 드높이기 위한 보조적 장치라면,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는 두 사람의 엎치락뒤치락 연애가 전면의 위치에 설 경우도 많다.

어쩌면 피아노에 몰입하게 될 때 노다메가 삐죽 내밀고 있는 입술이 이 작품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도전을 다루지만, 지나친 극적 긴장을 주지 않고 생활의 사소한 유머와 뒤섞여 유쾌하고 즐겁게. 그리고 바로 그 자연스러운 이야기 속에서 노다메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이 만화는 정말로 칸타빌레(노래하듯이)하며 카프리치온(제멋대로 변덕스럽게)하다.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중 www.sugarsp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