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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혹스러운 쾌감?
2001-05-10

3인조 밴드 뮤즈의 노련한 데뷔앨범 <Showbiz>

/ 소니뮤직 발매

뮤즈(Muse)는 말이 많은 밴드였다. 밴드 당사자들이 아니라 특히 밴드의 주변이 그랬다. 영국의 ‘궁벽하고 한물간 피서지 동네’(이것은 고국인 영국매체의 표현) 데번주 테인머스 출신인 이 시퍼렇게 젊은 삼인조는 99년에 이 데뷔앨범 가 발매되었을 무렵 꽤 화젯거리가 되었는데, 그것은 당시 갓 라디오를 타기 시작한 이들의 싱글 이 ‘시끄러운 록’이면서도 그 이상할 정도로 ‘애절한 감성’으로 인해 매우 양면적인 존재로 부각된 탓이었다. 그 곡은 학교와 클럽에 포진한 인디 근본주의자들(알 사람은 알겠지만 회교근본주의자들만큼이나 무섭다) 사이에서도, 에미넴과 웨스트라이프가 톱텐을 다투던 주류 팝 차트곡들 사이에서도 매우 기묘한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 곡을 라디오에서 듣는 느낌은 흡사 다 함께 햇빛 화사한 캘리포니아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찌된 셈인지 나 혼자만 고대 그리스 비극 정거장에 불시착한 듯한 당혹감이었다.

이 당혹감은 더 나아간다. 뮤즈의 세 사람은 열세살 때부터 함께 밴드를 시작한 고향 친구들로, 현재 평균연령 21살 정도밖에 안 되는데도 정작 이 바닥을 구른 경력이 웬만한 신인들을 사뿐히 앞선다. 이들은 보통 시커멓게 차려입기를 선호하며 라이브에서는 뭔가에 ‘씐 듯한’ 과격스런 매너와 사뭇 드넓은 행동반경을 자랑한다. 노래들은 하나같이 격렬하지 않으면 자폐적이다. 그러면서도 ‘비극적’이다. 앨범에서의 네 번짼가 다섯 번째 싱글이었던 이 앨범 타이틀대로 음악업계에 대한 과민할 정도의 환멸(생각해보라, 이건 중견스타의 여덟 번째 앨범이 아니라 스무살 먹은 신인의 데뷔앨범이거늘)을 담고 있었던 만큼, 앨범 대부분의 곡들에서 이들이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는 듯 몸부림치며 표현하는 정서는 뭔가 배신당했고 그래서 좌절하고 그래서 이 모든 걸 언젠가는 갚아주마 하는 알 수 없는 복수심의 무시무시한 자의식덩어리였다. 아무래도 보람없는 항우울 치료를 너무 오래 받던 환자들이 욱 해서 만든 밴드 같았다.

그런데 그런 이들의 곡이 의외로 쾌감을 준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정말 그렇다. 뮤즈의 노래들에는 확실히 ‘듣기의 쾌감’이라는 게 있다. 어떻게 짚으면 자지러지게 할 수 있는지, 그렇게 짚은 코드를 어떻게 풀어내야 우리를 포섭할 수 있는지를 다 안다는 것처럼, 의 곡들에는 나이를 무색게 하는 노련함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이 노련함이 듣기에 따라서는 부담스러워서 오래 못 가 질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 그건 그때 가서의 얘기다. 모르긴 해도 하필 지금 와서 국내 발매사가 나온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이 오랜 신보를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듯 작심하고(그리고 혹시 있을 법한 대박도 은근히 기대하면서) 찍어낸 데에는, 원 소속사인 머쉬룸 레이블의 국내 연계사가 상당 기간 공백상태였다는 이유 외에, 아무래도 망설여지는 라디오헤드식 사운드와의 강력한 연계성(아까 도입부에서 ‘주위 말이 많았다’고 한 묘사의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한) 덕을 보려는 부분이 물론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배팅이 되지 않는다. 알고 보면 궁극적으로 그것은 이 곡들이 갖는 첫인상의 대단한 흡인력, 그리하여 의외로 상당한 ‘국내 취향’의 가능성이 시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검증된 음반만 내야겠다는(=안전한 장사만 하고 싶다는) 듯한 회사쪽 입장은 좀 거북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썩 큰 오판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열심히 작업중이라는 뮤즈의 다음 신보까지도 다시금 국내에서 지각발매당하는 수모를 겪게 하지 않으려면, 이 곡들은 좀 들려져야 한다. 그들이 고국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칭찬과 비난을 뒤섞어 듣는 한이 있더라도.

성문영/ 팝음악애호가 montypyth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