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사랑 때문에 미쳐서 죽는 사람이 계속 있으니 자네는 며칠 내로 그런 기회를 갖게 될 걸세.”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나오는 이 문장은 <바람의 그림자>에도 절묘하게 적용된다. 운명적 사랑으로부터 죽는 날까지 도망갈 수 없는 사람들이 역사의 비극과 사회의 통념 안에서 겪는 일.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낭만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스티븐 킹의 말만큼 마술적 리얼리즘에 어우러진 고딕풍 연애담을 제대로 시사하는 말은 또 없을 것이다.
1945년 바르셀로나, 소년 다니엘은 아버지를 따라간 ‘잊혀진 책들의 묘지’에서 <바람의 그림자>라는 책을 고른다. 훌리안 카락스라는 무명의 작가가 쓴 그 책은, 누군가가 카락스의 모든 책을 찾아다니며 불사르는 통에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한권이기도 하다. <바람의 그림자>에 사로잡힌 다니엘은 어느 날, 책 속에 나오는 악마를 닮은 남자가 오래된 책을 태우는 냄새를 풍기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창 밖에서 목격한다. 악마를 닮은 그 사나이의 위협에도 다니엘은 카락스에 대해 계속 조사를 해나가고, 베일에 싸인 카락스의 삶과 죽음이 점차 드러난다. 하지만 이 책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일은, “성당을 돌들이 엄청나게 많은 끝이 뾰족한 곳으로 묘사하는 것”과 같다.
알고 있다. 당신이 이 책을 읽으며 낯익은 이야기의 흔적을 찾아내리라는 것을. <어셔가의 몰락>일 수도, <오페라의 유령>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낯익은 이야기들의 미로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바람의 그림자>는 소년 다니엘의 성장기인 동시에 역사의 희생양이 된 영혼에 대한 비통한 통찰이며, 책과 글쓰기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가이다.
희망은 잔인하고 헛되며, 양심이 없는 것이라고 <바람의 그림자>는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희망이 사람들을 어떻게 구원하는지 속삭인다. 이 책은 아름다운 여인들과 사랑과 복수에 맹목적인 남자들의 도시 바르셀로나를 동경하게 만든다. 그곳에는 저주받은 저택이 마법처럼 우뚝 서 있고, 사랑에 목숨을 건 소년과 소녀가 사랑의 도피를 꿈꾸고, 영겁의 고통에 사로잡힌 유령이 무덤을 파헤친다. 미국,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30여개국에서 출간된 <바람의 그림자>는 2002년 스페인의 ‘올해의 소설’, 2004년 프랑스의 ‘최고의 외국 소설’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