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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매력있어야 팔리지
2001-08-09

해외 만화·애니 / <러브히나 봄 스페셜>

애니메이션에는 동화나 소설, 게임 등 많은 소스가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가장 인기있는 것은 역시 ‘만화’다. 애니메이션에 비교적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그래픽적인 장르인데다가 작품의 스토리나 캐릭터에 이미 친숙해진 팬이 존재해 작품의 흥행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 제일의 만화 제작 편수를 자랑하는 일본의 경우, ‘만화의 애니메이션화’는 종종 만화의 인기도를 측정하는 가장 큰 척도가 되기도 한다. 인기 만화 중에서도 최근 애니메이션의 원작으로 가장 인기를 누리는 품목은 다양한 미남, 미녀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화다. 여러 명의 주연급 캐릭터를 한꺼번에 채용하면 관객마다 각자 좋아하는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테고 그렇게 수요층을 다양하게 확보하면 흥행성공률도 높일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작용한 것일까.

지난 8월1일 DVD와 비디오로 출시된 <러브히나 봄 스페셜>은 이러한 복수 캐릭터 전략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소년 매거진>에 연재중이고 12권까지 단행본으로 출간된 아카마쓰 겐의 만화 <러브히나>(국내에는 <러브 인 러브>란 제목으로 출간)가 원작. 재수생인 게타로가 여자기숙사 히나타장에 관리인으로 들어가면서 그곳의 여성캐릭터들과 좌충우돌하는 코믹 러브스토리다. 동경대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15년 전 추억의 소녀를 잊지 못하는 게타로는, 쾌활한 나루, 여성스러운 편인 시노부, 검도 소녀 모토코 등 무려 7명(11권까지)이 넘는 여성 캐릭터들의 연심을 한몸에 받는다. 이미 TV시리즈로 제작된 뒤 9편의 비디오로 출시된 바 있다. <러브히나 봄 스페셜>은 그뒤 스페셜판으로 제작되는 3부작 중 2번째 출시작. 단행본 7권에서 8권까지의 스토리를 재구성한 작품으로, 시험을 망치고 방황하던 게타로가 우연히 엉뚱한 섬으로 끌려가고 여성 캐릭터들이 그를 찾아나서는 내용이다. 전체 작품의 중요한 분기점을 다루는 데다가 작화 수준도 TV시리즈보다 업그레이드됐고, ‘도쿄대 합격보다는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만의 꿈을 좇아라’라는 메시지도 정신없이 관람에 투자한 50여분에 대한 나름의 보상이 된다.

이 작품에서는 여주인공격인 나루 외에 시노부라는 여성 캐릭터가 특히 강조된다. 시노부는 실제로 관객 사이에서 나루 다음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캐릭터. TV 미방영작인 25화에 등장한 모토코 역시 인기투표에서 상위를 차지한 캐릭터인데, 이렇게 여러 캐릭터를 등장시킨 다음 인기가 높은 순으로 소개해 팬들이 각자 좋아하는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다. <러브히나>는 단행본 외에도 12장의 DVD와 10장에 달하는 관련 음악 CD, 게임, CD-ROM 타이틀, 소설 그리고 수십종의 캐릭터상품으로 한번 팬이 된 사람들의 주머니를 노림과 동시 작품의 생명력을 증가시키고 있다.

요즘 젊은층은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멀티플렉스 극장처럼 한곳에서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는 문화에 익숙하고, 만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문화상품도 주제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매력 때문에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러브히나>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중심으로 애니메이션, 게임, 소설, 캐릭터 상품 등의 부대사업 마케팅을 진행하는 것도 시장성 확보라는 측면에서는 유효한 전략일 것이다.

스토리나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만화나 애니메이션이나 일단 ‘보는 것’이기 때문에 작품 비주얼의 중심이 되는 캐릭터에 좀더 많은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뮤지컬이나 오페라야 얼굴이 잘 안 보여도 연기와 노래로 즐길 수 있지만,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아무리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어도 기억에 남지 않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보다 내용은 좀 빈약해도 ‘매력’을 지닌 캐릭터가 등장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는 이가 한 군데라도 몰입할 수 있는 등장인물이 없는 작품은 ‘작품’으로 남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상품’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세준/ 만화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