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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경으로 관찰한 할리우드
2001-08-09

<할리우드의 영화 전략>

피터 바트 지음·김경식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1만2천원

1994년 9월 디즈니의 제작담당 이사 조 로스는 두곳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하나는 제작부문 사장 카첸버그로부터 온 것이었다. “헬기 사고로 사망한 서열 2위 프랭크 웰즈의 자리를 내가 맡게 됐으니, 제작부문 사장 자리를 당신이 맡아달라”라는 의사타진이었다. 두 번째 연락은 회장 마이클 아이즈너로부터 왔다. 카첸버그의 자리를 맡아달라는 건 같았지만, 카첸버그는 승진이 아니라 해고된다는 소식을 함께 전했다.

잘 알려져있듯이 카첸버그는 디즈니에서 밀려난 직후 스티븐 스필버그, 데이비드 게펜과 함께 드림웍스를 창립했고 7년 와신상담 끝에 올해 <슈렉>으로 아이스너에게 멋지게 복수했다. 두해 전 밀린 보너스 2억5천만달러를 지급하라며 카첸버그가 디즈니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기묘한 풍경이 벌어졌다. 디즈니의 변호인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앞날이 매우 불확실하며 디즈니가 큰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카첸버그의 변호인은 디즈니의 번성을 강변했다.

<할리우드의 영화 전략>은 98년 여름 시즌을 주무대로 할리우드 메이저들이 벌이는 흥행 전투를 몰래 카메라로 엿보듯 생생하게 기록한 책이다. 현재 <버라이어티> 편집장이며 메이저 스튜디오 간부를 역임한 피터 바트가 신랄한 필치로 그려내는 그들의 전투는, 예상과는 달리 흥행의 신들이 벌이는 고도의 지능 게임이 아니다. 오히려 신경과민자들이 벌이는 집단 난투극 혹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음모와 모험의 퍼레이드”다. 이 전쟁은 생존자들에게도 심각한 내상을 입혀 “이젠 할리우드를 떠나고 싶다”고 실토하게 만든다. <타이타닉>으로 영화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린 뒤 폭스의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카메론과 같이 영화를 만드는 일은 질병과 약혼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이 책은 탁월한 논픽션이다. 뉴저널리즘의 전통에 충실한 피터 바트의 서술은 믿기 힘들 만큼 구체적이다. “다음날인 금요일 늦은 오후, 셰리 랜싱은 차 안에서 리처드 로벳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버네딕트 캐니언의 자기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시간은 7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고, 그녀는 피곤했다. 게다가 로벳의 전화가 전파 장애로 인해 끊겼다가 들렸다가 하는 바람에 짜증이 났다. 로벳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하고 싶다는데요.’”

피터 바트는 영화의 기획, 제작, 배급에 이르는 전 시스템을 아우르는 광각렌즈와 엇갈리는 목적과 계산으로 밀담하고 화내고 배신하는 환호하는 할리우드 사람들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는 현미경을 함께 사용해 마치 그 전투판을 함께 치러낸 듯한 느낌을 독자에게 전해준다. 그리고 이 진기한 관찰자는 할리우드가 이제 짙은 피로와 통제불능의 경제학에 빠져들었으며, 그걸 알면서도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상태임을 또박또박한 어투로 일러준다. 그래서 서문에 적은 “영화사업은 매력적이고 자극적인데도 그들은 어떻게 하면 거기에서 벗어날까 하는 궁리를 하고 있다”는 수수께끼를 마침내 풀어준다. 할리우드영화 제작은 더도 덜도 아닌 거대한 도박이다. 도박은 감당할 만한 판돈일 때 재미있다. 이미 할리우드의 판돈은 제멋대로 움직이며 미친 듯이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98년 여름, 경고등이 반짝였고 할리우드는 그 경고등을 보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허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