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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엽기적인 그녀>
2001-08-09

곱고 평범한

몇번 토하고 주먹 좀 휘두른다고 `엽기적인` 여자가 된 그녀의 이야기는 평이했다. 보통보다도 더 건전하고 건강한 두 젊은 남녀가 대견스럽게 연애하는 장면들은 차라리 흐뭇할 정도였다. 최근 얼마 동안 유행한 `엽기`라는 말의 실체를 보는 듯 했다. 요즘 젊은 세대의 입에 오르내리는 엽기는 평범하기를 거부하는 삶의 태도라기보다는 `실수`라는 낱말과 말뜻이 더 가깝다. 그것은 지엽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삶의 디테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젊은 세대의 미래는 차라리 든든하고 건전하다. 이 영화가 제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말만 엽기고 내용은 엽기가 아닌 영화의 음악은 물론 엽기가 아니다. 음악은 이 영화가 엽기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아주 대놓고 알려준다. 음악은 정말 이 이상 평이할 수가 없을 정도로 평이하다. 어느 한장면에서의 선택도 도를 넘어서는 일이 없고 관객의 평범한 음악적 기대치를 배반하는 일이 없다. 음악을 맡은 사람은 김형석. 그는 한국 메이저 가요신을 장악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그에게는 대중의 음악적 요구사항을 넘겨짚는 빼어난 재주가 있다. 그래서 그는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이 고른 완성도를 지닌 대중적인 음악을 선보인다. 이번 영화를 통해서도 그는 그러한 특성을 잘 살린 것으로 여겨진다.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을 바탕으로 평이하지만 귀에 잘 들어오는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그의 음악적 능력이 이 평이한 영호에 나름의 서정성을 부여하고 있다.

O.S.T에는 영화에서 노래없이 멜로디만 나온 곡들에 가사를 입혀 상업성을 보강하였다. 물론 영화를 수놓던 감미로운 멜로디들도 감상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사운드트랙은 최근에 유행한 `모음집`의 일종이 되면서 결국 대중적으로 꽤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형석을 도와 함께 사운드트랙을 구성해주고 있는 가수들은 깔끔한 음악성들을 소유한 메이저 가수들. 영화의 주제가라 할 <I Believe>는 신승훈이 불렀다. 한 시절을 주름잡던 발라드 가수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릴 곳에서 떨어주고 있다. <이별 준비>라는 노래는 김조한이 부른다. 리듬 앤 블루스풍의 목소리 태크닉이 상당한 수준이다. 또 <같은 맘으로>라는 노래에는 김광진, 유리상자, 이현도, 엄정화, 이적, 윤도현, 김동률, 김현정, 박정현, 김현성 등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무슨 마음으로 이 사람들이 모여 <같은 맘으로>를 불렀는지는 모르겠으나 상업적으로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은 분명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남는 아쉬움과 O.S.T를 듣고 나서 남은 아쉬움이 거의 비슷하다 아무리 대중적으로 비빔밥을 만들어놓는다고 해도 그 밑으로 어떤 뼈다귀들이 좀 보여야 할 것 같은데 그런 게 거의 안 보인다. 래그 타임, 파헬벨의 <캐논>, 가요, R&B, 심지어는 <My Gril>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들을 장면에 따라 그때그때 차용하는 것을 나쁘다고야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차용의 밑자락을 구성하는 원칙 같은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명색이 `엽기적`인 그녀에 관한 영화인데 음악에도 그런 도발적인 요소가 조금 숨어 있어야 좋지 않았을까. 아니 아니. 그럴 수는 없었을 것 같다. 만일 그랬다면 이 평이한 영화에서 음악만 튀었을 테니.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