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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적 영상문화 공동체의 발견,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

김소영 편저/ 현실문화연구 펴냄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는 지난 5년간 다양한 국적의 학자들이 참여했던 국제 심포지엄의 성과물로, 아시아 영상문화를 통해 아시아를 횡단하려는 혹은 횡단 가능성을 찾으려고 시도하는 연구서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 실린 총 18편의 논문들이 관심을 두는 건 하나의 특정한 텍스트에 대한 분석 작업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소통과 관계이다. 이를테면 그간의 아시아영화에 대한 연구는 오리엔탈리즘적 접근 혹은 민족주의적 접근에 한정된 경향이 있었다. 국가 혹은 민족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던 기존의 연구들은 최근 증가하고 있는 국가와 민족을 가로지르는 문화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 책이 제시하는 것은 제목에서도 암시되었던 바, ‘트랜스’(trans)다. 물론 여기서 ‘트랜스’는 그저 넘어서기의 의미가 아니라 “경계, 균열, 주변부, 이산적인 ‘제3의 공간’을 의미”하며, “존재의 다른 상태로의 전이”를 뜻한다.

이 책은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 ‘(트랜스) 아시아 시네마’, ‘(동)아시아 내셔널 시네마의 새로운 토픽들’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나뉜다. 이 주제들하에서 필자들은 최근 동아시아의 한류 현상부터 팬 문화, 포르노그래피, 여성주의적 미디어, 동성애 로맨스, 이소룡의 몸, <링>의 비교연구 등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 모두가 염두에 두는 건 아시아 상호간의 대화 가능성, 그 가능성을 모색하는 매체의 역할 그리고 국가, 민족, 지역에 구속되지 않는 아시아적 공동체의 발견이다. 그래서 분석의 중심은 줄곧 문화의 생산, 유통 과정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경제적 구조에 놓여 있다. 미쓰히로 요시모토의 “영화가 정기적으로 국경을 넘어 제작, 순환, 소비될 때 (중략) 여전히 향수어린 민족주의로 추락하지 않으면서도 다국적 자본의 막대한 힘에 대항해서 민족의 특정성을 비판적으로 설명해내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문제 제기는 이 책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이는 현재의 아시아 영상문화를 다국적 자본, 민족, 젠더, 계급, 전 지구화 등과 같은 혼종적인 조건들 속에서 읽어내고 그것을 콘텍스트에 따라 끊임없이 재개념화하려는 시도이다. 이 책은 이러한 시도에서 탈서구적 담론의 가능성을 본다.

그런 의미에서 폴 윌먼의 ‘한국영화를 통해 우회하기’는 가장 흥미로운 글이다. 그가 비서구적 비교영화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던지는 질문은 새겨둘 필요가 있다. “어떻게 특정 사회·역사적 조건 내에서 형성된 문화 생산물이 다른 사회·역사적 배열하에서 ‘올바르게 인식될’ 수 있는가”의 문제.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곧 역사의 작동방식을 성찰하는 것과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