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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존재하는 작은 균열, <도쿄기담집>
이다혜 2006-04-28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문학사상사 펴냄

“나, 무라카미는 이 글을 쓴 사람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은 책 제목만큼이나 사실과 픽션을 혼동하게 만드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겪었다고 전해 들었을 법한 도시의 전설들을 무라카미 하루키는 단편들로 엮어냈다. <우연한 여행자>는 ‘무라카미’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미국 체류 중 재즈클럽에서 토미 플래너건의 라이브 연주를 듣다가 실망한 ‘나’는, 두곡을 신청한다면, 이라는 상상을 하며 듣고 싶은 곡을 마음속에 그린다. 대중에 잘 알려지지도 않은 두곡을 생각했을 뿐이건만 공교롭게도 플래너건은 그 두곡을 이어 연주한다.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재즈 곡 가운데서, 무대의 마지막에 이 두곡이 잇따라 연주될 확률’이 <도쿄기담집>에 실린 이야기들의 공통점이다. 무의식이 실제 사건으로 벌어지는, 간절함이 낳는 기이한 동시성은 <하나레이 만>에서도 일어난다. 하와이 하나레이 만에서 서핑을 하다가 상어에 오른쪽 다리를 물어 뜯겨 죽은 열아홉살 난 아들의 시체를 찾으러 하와이로 간 사치는, 이후 10년간 비슷한 시기에 하나레이 만을 찾는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일본인 서퍼들에게서 외다리 서퍼, 아들의 유령 이야기를 듣는다. 맨션의 24층과 26층에서 사라진 사내를 찾는 일이나, 사람의 이름을 훔치는 원숭이를 만나는 일은 초현실에 속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발단은 아주 사소한 도시의 일상에 속한다. 일상에 존재하던 작은 균열이 결국 사람들을 움직이고 신기한 사건으로 이끌지만, 결국 모두 일상으로 돌아와 살아간다(하지만 삶은 더이상 같을 수 없다). 어디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를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엮는 하루키의 <도쿄기담집>은 2006년 프란츠 카프카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