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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답게 꿈꿔다오
2001-08-30

해외만화애니/ <여름의 로켓>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신분이 바뀌면서 제일 아쉬웠던 점은 ‘방학’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특히 여름방학은 건물, 도시, 가전제품 등과 같은 인공물보다 자연적인 공간 속으로 활동범위가 넓어지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거리들이 만들어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시골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은하수는 정말로 강처럼 흐르듯 펼쳐져 있었고, 신화나 동화책에서 보았던 수많은 별자리들이 온몸으로 껴안을 수 있을 듯 가까워 보였다. 아주 맑은 날이면 ‘인공위성’도 종종 볼 수 있는 우주의 향연을 맘껏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서울 밤하늘에서 제대로 보이는 별의 수가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사람이 살기가 힘들어지는 공간이 되어가는 것이련만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도시로 몰려오고 도시는 점점 커지고 있다. 요즘 학생들은 학교에 있는 시간 외에도 외국의 말과 악기 등과 같은 또다른 공부를 하기 위해 콘크리트로 덮인 건물 사이를 다니고 있다. 바퀴벌레, 파리, 모기 이외의 곤충은 거의 보지 못하고, 곤충채집 숙제를 하기 위해 대행업체에 돈을 주고 부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자연과 더욱 멀어진 아이들, 도시의 아이들이 잃어버린 모험을 보여주는 <여름의 로켓>을 더 뒤적이게 되는 것도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모른다.

<여름의 로켓>은 8월 일본 백천사에서 출간된 아사리 요시토오의 신작 단행본. 아사리 요시토오는, 그나마 국내에 근래 출간된 시리즈물이지만 대여점이나 만화방에 거의 비치돼 있지 않은 마니아성 만화이자 일본에서조차도 단행본을 찾아보기가 힘든 <와하맨>의 작가다. <와하맨>에서 정신나간 아틀란티스제 황금해골 인간을 정의의 히어로로 내세웠던 그는 <여름의 로켓>에서 어느 시골학교의 초등학생 5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몸이 약하지만 머리가 뛰어난 전학생 미우라, 반에서 과학적 머리가 제일 뛰어나지만 미우라에게 로켓 제작의 주도권을 빼앗기자 반발하는 기타야마, 산수성적은 항상 ‘가’지만 계산기만 쥐어주면 어려운 공학적 계산도 해내는 ‘헤지마’, 단지 로켓이 좋아서 제작에 제일 열심이지만 맨 마지막회에서야 겨우 이름이 등장한 ‘2인조’ 오카야우치와 쿠가. 5명의 멤버가 모여 ‘남이 시키는 일만 하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해라’라며 자유롭게 학생을 가르치다 전출당하는 선생님을 위해 여름방학의 ‘자유연구’ 과제로 ‘로켓’을 만들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몇백미터를 날리려던 처음의 계획은 몇번의 실험실패와 아이들간의 반목을 거쳐 선생님이 떠나는 마지막날, 직경 36cm, 높이 3m짜리 로켓으로 최고고도 1500km, 최저고도 350km의 지구를 순회하는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게 된다. 인공위성 발사위치를 쫓아온 조사단마저도 이들의 발사 고백에 귀기울여주지 않지만, 소년들의 머리 위를 가로지르며 날고 있는 그들의 인공위성의 궤적은 그저 황당한 SF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아이들의 ‘모험’이 들어 있다.

최근 나오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에는 ‘모험’보다는 ‘어드벤처’라는 단어가 더 많이 쓰이고 중세유럽, 중국 등 이국이나 먼 우주 한편에서 초능력을 지닌 불세출의 주인공이 활약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가끔 평범한 캐릭터가 나와도 엄청난 비밀을 지닌 과거나 히어로가 되기 위한 당위성으로 곧 포장되어버린다. 어린 시절 재미있게 보았던 <두심이 표류기>에서는 이불과 과자, 뗏목을 가지고 세계여행을 하러 가는 3명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황당하고 어린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우기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린이에 걸맞은 발상과 행동을 하는 평범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만화를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말썽은 부려도 어려운 친구를 도와주는 의 풋꼬추, 칠떡이, 뚝배기나 학교 운동회의 사람찾기 대회에서 ‘아버지’가 적힌 쪽지를 뽑아 출장가신 아버지를 데리러 인천까지 달려가는 <꺼벙이>의 주인공이 만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어린이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말썽꾸러기’, ‘개구쟁이’는 사라지고 ‘왕따’나 ‘부적응아’, ‘저능아’ 같은 단어만 남아 있는 학교가 되어버려서는 안될것이다.

김세준/ 만화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