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종횡무진, 동서고금의 몸 이야기, <몸: 욕망과 지혜의 문화 사전>

고백하건대 필자는 그동안 중국 저자가 집필한 교양서를 불신해왔다. 불신의 까닭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촌스럽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느 특정 주제에 관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인구 대국에 합당하기라도 하듯 지면에 쏟아부어놓는다. 글투는 또 왜 그렇게 지식 계몽의 일념에 불타는지. 이 책 <몸: 욕망과 지혜의 문화 사전>은 그런 불신을 어느 정도 삭감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머리, 머리카락, 얼굴, 눈썹, 눈, 눈빛, 코, 냄새, 체취, 귀, 입, 혀, 피부, 목, 어깨, 유방, 허리, 배꼽, 배, 섹스, 등, 엉덩이, 팔, 손, 다리, 무릎, 발, 뼈. 실로 우리 몸 구석구석에 관한 이야기의 성찬이다. 이런 신체 부위 각각에 관한 동서고금의 이야기를 넘나드는 종횡무진성이 이 책의 큰 특징이다. 이를테면 “가지 끝에 매달린 붉은 장미 같은 그녀의 입술이 여름 날 그윽한 꽃향기 속에서 입맞춤을 한다”는 셰익스피어의 표현과, 중국 서진시대 시인 좌사의 “짙은 연지 붉은 입술에 넘친다”가 비교된다.

1926년 개봉된 영화 <돈 주안>에서 2시간47분 동안 주인공이 아름다운 여성들과 191번 입맞춤을 했으니 53초에 한번꼴이라는 이야기가 뒤따르고, 연인과 입맞춤하면서 “그녀의 연약한 입술을 태워버리지나 않을까” 진심으로 걱정했다는 페르시아 시인 하피즈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입맞춤은 바로 나 아닌 누군가를 입 속에 넣고 그 맛을 음미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연인들은 서로의 맛이 얼마나 달콤한지 알기 때문에 서로를 되씹고 빨아들이며, 자기 안에서 상대를 느낀다. 이렇듯 풀뿌리든 사랑하는 연인이든, 모든 사물은 먼저 음식물이 되어야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이다.’

저자는 이렇게 동서고금의 몸에 얽힌 이야기들을 단순히 나열하여 전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한다’.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저자는 학자가 아니라 천상 작가다. 엄청난 양의 정보를 쏟아부었다는 점은 중국인 저자의 교양서에 대한 필자의 편견에 부합되지만, 쏟아붓는 결과 맥이 다르다. 아래 글이 도대체 몸의 어떤 부위를 묘사(?)한 것인지 맞혀보시기를.

‘사나운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모든 것이 불길에 사로잡힌 용광로, 그 안에서 온갖 원소들이 이리저리 부딪히며 흘러 다닌다. 물과 불, 음과 양이 서로를 받아들인다. 마침내 무한한 허무가 진주 한알로 응집되고, 어두운 밤 한가운데 부끄러운 듯 한줄기 빛이 반짝인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웅장하고 위대한 악장.’

정답은 배, 정확히 말하면 성숙한 여성의 배다. 이만하면 저자 샤오춘레이가 표현할 줄 아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방만하기까지 한 지식의 폭이 아니라 바로 표현에 있다. 그렇다면 번역서 제목을 재고해봐야 한다. ‘사전’이라니 당치 않다. 그 가장 고급한 수준에서의 에세이라고 하는 편이 옳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