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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에 평화를, 피스!
권은주 2007-02-01

<나블루스> 김보현 지음/ 허브 펴냄

높은 콘크리트 장벽에 가두어져 이제는 유대의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섬이 되어버린 곳. 차별과 탄압, 유혈사태가 일상이 되어버린 곳. 바로 팔레스타인이다. <나블루스>는 팔레스타인 중부에 위치한 도시 나블루스를 배경으로 그곳의 젊음이 폭탄과 함께 사라져가는,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풍경을 보여준다.

누구보다 예술의 힘을 믿었지만 팍팍한 현실과 인티파다 도중 약혼자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교자가 되려는 하나딘, 분리장벽에 벽화를 그리며 세상과 사랑하는 하나딘을 위로하고 싶은 나세르 그리고 이스라엘의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형 때문에 이중첩자 노릇을 해야 하는 라자. 수용소와도 같은 나블루스의 생활에서 이들에게 남은 건 이스라엘을 향해 폭탄을 안고 몸을 던지는 목표뿐이다. 작가는 아이들이 던진 돌멩이에, 평화를 그리는 페인트병에 날아드는 무심한 총탄을 보여주며 팔레스타인이 우리에겐 “잠깐이면 가봐도 괜찮은” 곳이지만 그들에겐 끔찍한 현재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나블루스>는 사변적이거나 판타지가 주를 이루는 순정만화에서 흔치 않은 시도다. 이 만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은 소재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온전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작가가 ‘팔레스타인’이라는 어찌 보면 뻔한 소재를 뻔하게 휘발시키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 때문이다. <나블루스>는 그림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시원하면서도 단단한 데생, 클로즈업과 원경의 적극적인 사용이 눈에 띄는 김보현의 화풍은 고전적인 순정만화 냄새가 나면서도 훨씬 강단있다. 독립만화풍 그림과 인터넷 카툰풍 그림이 주를 이루는 지금 이런 고전적인 화풍은 신선하기까지하다. 또한 비전형적인 말풍선의 위치 변용은 약간 산만하긴 하지만 오히려 일상대화를 듣는 듯한 자유로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