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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 자매들을 만나다
2001-10-11

샤린과 루스탈의 <화이트 소냐>

그 안에는 뉴욕의 풍광이 있다. 고급상점이 즐비한 매디슨 애버뉴, 방치된 폐차와 낙서가 지저분한 할렘과 러시아인들의 가득한 리틀 오데사까지. 그리고 열한살에 강간당하고 친부가 마피아에게 노리개로 팔아버린 뒤 몸을 팔고 살인하며 살아가는 소냐의 이야기는 ‘뉴욕’이라는 공간을 벗어나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설정이다. 뤽 베송이 <니키타>에서 제시한 ‘어린 시절부터 길들여진 살인병기 여성’이라는 설정과 유사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제롬 샤린이 시나리오를 맡은 자크 드 루스탈의 <화이트 소냐>는 주인공이나 이야기, 구체적인 플롯에 이르기까지 하드보일드한 누아르영화를 연상시킨다. 주인공 소냐는 자매애(어쩌면 레즈비언일 수도 있는)에서 힘을 얻어, <화이트 소냐>라는 제목이 상징하는 대로 남성의 욕망과 매춘과 폭력을 일삼는 마피아 조직에 대항하기에 이른다.

하드보일드한 이야기, 강렬한 색의 향연

기왕 누아르로 갈라치면 이미지에 있어 극단적인 흑백의 명암대비가 보여져야 할 터인데, <화이트 소냐>의 이미지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고 <화이트 소냐>의 강렬한 이미지가 하드보일드한 이야기와 성공적으로 결합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화이트 소냐>의 이미지는 누아르의 그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낯설지도 않다. 같은 프랑스산 그래픽 노블이라고 해도 앙키 빌랄이 보여주는 완벽에 가까운 실사 이미지의 환상적 재현이나 뫼비우스의 SF풍 이미지, 부크의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판타지한 이미지와 또다른 느낌을 준다. 루스탈의 캐릭터는 빌랄이나 뫼비우스, 부크나 프라도처럼 사실적이지 못하다. 일찍이 광고와 출판계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한 루스탈은 1987년 필립 파링고와 작업한 <바니와 푸른 음표>로 명성을 얻기 시작해, <뉴욕-마이애미 90>(1989), <낭만적인 청년>(1994) 등의 작품으로 프랑스의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루스탈이 보여주는 독특한 시각 이미지는 우리에게도 낯익은 것들, 바로 고흐와 고갱에 뿌리를 두고 마티스를 중심으로 시작된 야수파의 것이다. 앙리 마티스, 앙드레 드랭, 모리스 블라맹크, 조르주 루오, 망갱, 라울 뒤피 등이 중심이 된 20세기 최초의 미술운동이기도 한 야수파는 색채를 해석하는 데 있어 화가의 주관이 강조되었고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며 화면을 평면화시켰다. 조르주 루오가 보여준 검은 윤곽선이나 마티스가 보여준 화려한 원색은 루스탈의 작품에서 만나는 바로 그 이미지들이다.

5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소냐는 다시 뉴욕의 거리로 돌아온다. 친절한 흑인 친구 헨리를 찾아온 소냐는 포주 마틸다와 마피아 대부 핀토를 만난다. 위험의 순간 소냐는 자신을 감시하는 마리오의 배신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하지만, 행운은 곧 불행으로 바뀌고 다시 핀토에게 잡혀 마틸다의 가게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기회를 노리던 소냐는 마리오와 자신의 복수를 하게 되고 흑인 자매들이 살고 있는 교도소로 돌아간다.

샤린의 시나리오는 효과적이며 경제적으로 플롯을 구성하고, 이야기를 끌어간다. 불필요한 이야기는 과감하게 생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여러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액션의 재미를 느끼는 독자에서부터, 무능력한 아버지에 의해 어린 시절 마피아에게 팔려가 성의 노리개가 된 소냐의 삶, 비참하게 늙어버린 아버지의 종말, 순진한 마리오의 러브스토리에 이르기까지. <화이트 소냐>는 짧지만 읽을 때마다 다른 양상의 재미를 선사한다. 만화의 칸에 갇힌 야수

루이 보셀은 1905년 살롱 도톤(Salon d’Automne)에 출품된 마르케의 15세기풍 청동조각을 보고 “야수(포브)의 우리에 갇혀 있는 듯한 도나텔로(르네상스 초기의 이탈리아 조각가)”라고 표현했다. 그 문장을 빌리자면, <화이트 소냐>는 “칸 안에 갇혀 있는 야수의 삶”이다. 나는 이 책을 서점에서 만나는 순간, 표지에 그려진 소냐의 강렬한 이미지에 야수를 느꼈다. 강렬한 색채와 짙은 외곽선, 게다가 하드보일드한 이야기. 말 그대로 ‘야수’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회화와 할리우드의 영화까지를 한몸에 지니고 있는 만화. 그래서 만화는 온갖 문예장르에 촉수를 내뻗고 있는 탐식의 장르이며,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매체이고, 이를 모아 새로운 이미지 제국을 구축하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대상이다. 만화의 실체가 궁금하신 분들에게 야수의 만화 루스탈을 권한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