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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나머지 반쪽

<북한영화사>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영화에 대한 연구나 저술은 ‘허가받은 개인’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백지한’이라는 필명의 연구자가 쓴 <북한영화의 이해>(1989, 친구)를 예외로 한다면 말이다. 대부분 뼈대만 앙상했던 80년대 저작들에 비해 이제 북한영화에 대한 연구도 꽤 살이 붙고 있다. 북한영화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이효인의 박사논문 등 연구와 저작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고, 최근에는 소장 북한영화 연구자를 대표하는 이명자가 <북한영화사>를 내놓았다.

그간 출판된 책들이 북한의 문예정책에 초점을 맞춰 서술되었다면 이 책은 문예정책과 사회문화사, 그리고 영화사를 날줄과 씨줄로 엮어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서문에서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북한영화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려는 영화문학(시나리오) 작가가 있고 더 풍부한 화면을 만들려는 연출가와 촬영감독의 고민이 있다. 물론 그 영화에는 현재 북한의 신세대 스타 리월숙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들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의 극영화에 해당하는 북한의 ‘예술영화’에도 정탐물, 경희극 등 장르가 있고, ‘피바다식’ 영화창작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 취향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는 ‘성황당식’ 창작법도 있다. 또 김정일의 <영화예술론>의 경우 주체 문예이론은 세심하게 제시하는 것에 비해 촬영 등 기술적인 부분은 추상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감독의 스타일이 반영될 여지도 있다. 물론 북한의 연출자는 전체 창작성원들과 배우를 이끌고 ‘속도전’을 수행하는 총사령관이며 그 영화는 당 정책에 부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컨대 북한영화 <춘향전>(1959)은 이도령과 방자의 에피소드를 통해 계급적 해석에 주력하고, 성적인 정숙함을 강조하기 위해 봄에 만난 춘향과 이도령이 가을이 되어서야 겨우 한번 손을 잡는 등 본래의 <춘향전>이 주는 커다란 매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북한영화 역시 북한 대중의 정서가 교감하는 매개체이자 문화형식이다. 남한의 <팔도강산> 시리즈에 해당하는 <우리집 문제> 시리즈가 1973년부터 10년간 큰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대중의 영화적 욕망과 만났기 때문이며, 2006년 평양의 영화관을 달군 <한 녀학생의 일기>에서처럼 대중은 영화가 말하는 ‘과학중시사상’보다는 연출자가 그리는 평범한 여학생의 심리와 정신적 성장 과정에 더 주목한다. 1950년대 한국영화를 신파물로 한정하는 등 ‘남한영화사’와의 비교가 정치하지 못한 부분들이 아쉽지만, 이 책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반쪽의 영화사를 묵묵히 채우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