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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완의 영화음악] <아멜리에>
2001-11-01

3박자로 열리는 보물상자의 추억

지금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리듬은 4분의 4박자이다. 4박자는 2박자로 분절되는 업 비트의 속도감(테크노), 여백을 찌르는 당김음들로 표현되는 다운 비트의 신명(힙합), 절도, 안정감 등을 의미하는데, 4박자를 그토록 풍부하게 만든 사람들은 다름 아닌 흑인들이다. 그들은 4박자 안에 다양한 폴리 리듬을 집어넣음으로써 4박자의 증식과 지배를 실현시켰다. 그리고 그 박자들은, 다시, 그것을 훔쳐 시뮬레이션하는 백인들의 포장술을 포함하여, 미국식 유통망을 통해 전세계로 배급된다.

반면에 3박자는 이제는 거추장스러워진 세련됨, 느림, 빙글빙글 도는 반추의 드레스를 의미한다고나 할까. 19세기는 왈츠의 시대였지만 더이상은 그렇지 않다. 3박자는 잃어버린 유럽식 보물상자를 추억하는 박자이다.

프랑스영화 <아멜리에>는 ‘3박자’의 테마로 시작한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3박자의 테마이다. 아코디언으로 연주하는 그 3박자의 테마는 <아멜리에>라는 영화가 4박자의 세상에 던지는 유럽식의 아기자기하고 정교한, 3박자로 된 사랑의 반기라는 걸 알려준다. 3박자의 테마는 주인공 아멜리에가 우연히 자기 방 벽 속에서 발견하는 오래된 장난감 보물상자의 리듬이 된다. 그것은 미래로 달려가는 힘차고 박력있는 리듬이 아니다. 대신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억의 소용돌이에 몸을 맡긴 채 동화 같은 아름다움이 통하는 세계로 관객을 인도하는 퇴행의 회전력을 지닌 리듬이다.

이 영화의 음악은 얀 티에르상이 맡았다. 그는 1970년생으로 어려서 피아노, 바이올린 같은 전통적인 악기의 연주법과 고전적인 관현악법을 배움으로써 유럽음악의 언어를 몸에 익혔다. 그러나 1980년대에는 록음악에 많이 경도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의 프랑스는 음악적으로 혼융의 시기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영국의 포스트 펑크 스타일에 영향을 받아 새로운 ‘샹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 시기를 거치며 얀 티에르상은 고전적인 감각과 더불어 현대적인 감각을 두루 갖추게 되었다. 수많은 단편영화나 연극 음악을 비롯, 여러 영화의 음악을 담당했던 그는 몇장의 솔로앨범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의 데뷔앨범으로 호평을 받은 <괴물의 월츠> 같은 앨범은 그의 다양한 음악적 편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앨범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에는 3박자의 리듬과 아코디언의 낭만적인 떨림이 이끄는 얀 티에르상의 감각적인 음악들 외에도 <길티> <당신이 거기 없었다면> 등의 1930년대 노래들도 삽입되어 있다. 그 모든 음악들이, 선명하고 화려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지닌 예쁜 색조의 영화 전편에 흐르면서 영화를 한개의 커다란 ‘장난감 상자’로 만들어주고 있다. 인물들은 인형처럼 움직이고 도시의 풍경은 그 인형들이 놀거나 배치되어 있는 장난감 통 같아 보인다. 그래서 거기서 더이상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답답함마저 있다. 이미 너무 색이 바래 생명감을 느끼기 힘든, 그저 잃어버린 추억들을 관조하고 있는 듯한 느낌 말이다.

그렇긴 해도 이 영화의 음악은 거기에 사용된 고풍스러운 유럽 악기들 때문에라도 신선하게 들린다. 이젠 그 악기들의 존재 자체가 그리워지는 시대이다. 그래서 마치 장난감 상자를 열었을 때 울리는 오르골 선율처럼, 영화의 음악은 관객으로 하여금 오래 전에 잃어버린 사랑의 동화를 재발견해주고 있다. 그것은 과거를 추억하는 유럽사람들의 ‘현재형’의 한 모습이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