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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풍선을 타고
2001-11-01

복고만화 <독불장군>

국내 만화시장에 복고바람이 거세다. 70년대 한국 명랑만화의 대표격인 <꺼벙이> <도깨비 감투> 등이 복간되었고, 데즈카 오사무의 고전 <우주소년 아톰> <리본의 기사> <밀림의 왕자 레오> 등이 속속 번역되어 나오고 있다. 더이상 대중을 열광시킬 새로운 얼굴이 나오지 않아 옛 창고를 뒤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없지 않지만, 30대를 넘어선 세대들에게 이들 만화는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갈 타임머신과 같다. 그래, 어디든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도쿄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던 아오키 이지로는 16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시골에서 사는 게 꿈’인 아내의 성화도 있었지만,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도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실천해보고자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비어 있는 집, 자신의 방은 신기하게도 16년 전 그대로다. 게다가 이미 30대를 훌쩍 넘어 제각각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지만, 모두 고향에 남아 옛 우정을 다시 보여준다. 돌아오길 잘했다. 모두 그대로 남아 있어줘서 고맙다. 그렇지만 단 하나, 너는 왜 아직 여기에 있는 거냐? 독불장군, 아카마츠.

가미오 류의 스토리에 나카하라 유가 그림을 그린 <독불장군>(赤松さん)은 노골적인 복고만화다. 고향에 돌아간 30대 주인공은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만나 옛 기억을 하나둘 떠올린다. 그리고 어느새 시간을 잊어먹고 그 시절처럼 놀게 된다. 옛날 장난감이 비싼 값에 팔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남감 가게를 털러 가고, 마을의 아마추어 밴드 콘테스트에 그 시절의 하이스쿨 밴드를 다시 결성해서 도전한다. 어릴 적 만화를 모아 동네 꼬마들에게 보여주고, 딱지치기, 팽이 돌리기 등의 옛날 놀이들을 가르쳐준다.

사실 그들은 이런 일을 벌일 만한 처지가 아니다. 법당 주지에, 마을 의원에, 모두 다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은 어엿한 어른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을 추억의 폭풍 속으로 몰아넣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독불장군인 2살 연상의 친구 아카마츠다. 그동안 무엇을 하고 돌아다녔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직도 옛날의 철없음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막강한 카리스마로 친구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그때도 비딱했지만, 지금도 변함없는, 세월에 의해 전혀 마모되지 않은, 시대착오의 불량 청춘이다. 무언가 빠진 듯한, 부족한 듯한

원제가 <아카마츠씨>라는 데서도 드러나지만 아카마츠는 이 만화의 키워드다. <미스 헬로우>의 헬로우가 그랬듯이, 의 산시로가 그랬듯이, 그가 앞장서 독자들을 휘어잡아야만 그 주변의 조연들이 자신들의 개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하지만 <독불장군>의 아카마츠는 그렇게 성공적인 출발을 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독불장군>은 분명히 우라사와 나오키를 떠올리게 한다. 우라사와 나오키를 좋아하는 사람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몬스터>와 같은 극한적 상상력으로 치닫는 미스터리와 서스펜스의 묘미를 즐기는 부류, 두 번째는 <야와라> <해피>에서 펼쳐지는 이해하기 쉬운 승부세계를 즐기는 부류, 세 번째는 <마스터 키튼>과 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와 우정의 에피소드에 공감하는 부류다. <독불장군>은 이중 세 번째 부류의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어필하는 만화다. 인물을 그리는 그림 스타일, 각각의 조연들을 배치하는 성격 구성, 이야기의 기본적인 전개 방식 등에서 우라사와 나오키와 아주 흡사하다. 그런데도 <독불장군>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그것에서 무언가가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그것이 이야기의 정밀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스토리 작가까지 대동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 작품의 컨셉은 아주 명확하다. 30대들에게 고등학교 시절 정도의 추억거리들을 되살려주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 만화, 동굴 속의 보물, 하이스쿨 밴드와 같은 소재들을 꺼내놓는다. 누구나 꺼내놓을 법한 소재지만 추억이란 결국 ‘공유하는 어떤 소재’에서 출발하니 그것을 시비삼을 수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너무 뻔한 곳으로 흘러가고, 가끔 비틀어진 곳으로 가도 개연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밴드가 왜 굳이 지금의 고등학교 밴드에 린치를 당해야 하는지, 아카마츠를 짝사랑하던 여자의 딸이 왜 그의 애를 낳았다고 거짓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각 에피소드 결말부의 반전들도 대체로 안이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편안한 만화읽기의 즐거움

최근 들어 국내 만화팬들의 눈이 높아지면서 3, 4년 전만 해도 무조건적인 박수를 보내던 우라사와 나오키나 히로카네 겐시의 작품들을 상당히 비판적으로 보는 입장들이 생겨나고 있다. 너무 자기 주제를 강요하는 내용이라든지 독자의 감정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연출법 등이 도마에 오르고 있고, 나도 그런 비판적 입장에 상당부분 동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처럼 숙련된 만화적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김빠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경우를 보면 그래도 일급 만화가들이 가지고 있는 플러스 알파를 분명히 깨닫게 된다. <독불장군>은 상당한 미덕을 갖추고 있고, 보기 드물게 성인 독자들에게 편안한 만화읽기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하지만 연재가 이어지면서 부족한 플러스 알파를 분명히 찾아주었으면 더욱 좋겠다.

만화가인 나카하라 유는 액션복수극 <토키오>, 육상만화 <스타트>(글 사카타 노부히로), 야구만화 <으랏차차 천재 보이> 등 열혈의 느낌이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복고풍 만화를 주로 그려왔다. <독불장군>의 스토리 작가인 가미오 류와는 1999년 천재 야구광 부자를 주인공으로 한 <의지로 하고 있습니다>를 발간한 적이 있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중 www.sugarspr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