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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의 동지, 다케시의 벗
2001-11-01

일본 영화음악 대가 히사이시 조 내한공연

험난한 세상의 링 위에서 멍든 채 돌아온 두 친구의 남루한 아침을 감싸던 선율을 기억하는지. 야쿠자와 권투선수로 제각각 다른 싸움에 나섰다가 패배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몸을 자전거에 싣고 “이제 겨우 시작”이라고 서로를 다독이던 소년들, 그 가파른 성장기의 한 굽이에서 맴돌던 <키즈 리턴>의 음표들 말이다. 때로는 간결하면서도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로, 때로는 꿈틀대는 리듬의 생기로 영상이 담아내는 표정을 ‘들려주는’ 작곡가 히사이시 조가 오는 11월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공연을 갖는다.

히사이시 조는 <키즈 리턴> <소나티네> <하나비> 등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웃집 토토로> 등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음악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작곡가. 20여년 동안 일본은 물론, 세계 영화팬들의 귀를 사로잡아온 그의 첫 발은 4살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뒤 일본 국립음악대학 작곡과 재학 시절, 당시의 새로운 흐름이던 미니멀리즘을 수용하며 현대음악 작곡가 겸 연주자로 활동을 시작했고, 82년 첫 솔로음반 <Information>을 선보였다. 자신의 창작음반은 물론 TV와 CF음악, 각종 음반프로듀서 등을 거쳐왔지만, 무엇보다 그의 음악을 기억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역시 84년 미야자키 하야오와의 만남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음악을 맡게 된 그는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에 이국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음색을 들려줬고, 이후 미야자키의 든든한 파트너로 거의 전작의 음악을 맡아왔다. <천공의 성 라퓨타>의 애달프고 환상적인 서정곡도, 일본 전통음악을 활용한 <이웃집 토토로>의 생기발랄한 노래도, <붉은 돼지>의 낭만적인 유럽풍 선율도, 모두 그의 솜씨다.

미야자키 하야오와의 작업이 클래식과 일본 음악의 전통을 세련되게 소화했다면, 기타노 다케시와의 작업은 현대음악과 미니멀리즘의 간결함으로 명성을 이어갔다. 애수어린 서정을 품은 피아노와 전자악기 등을 활용한 리듬 파트를 따로 또 같이 들려주는 음악은, 극단적이면서도 돌연한 폭력과 순수,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희비극으로 뒤섞는 기타노 다케시의 호흡에 잘 맞물려 있다. 92년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로 기타노 다케시를 만난 그의 음악은, 폭력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야쿠자들의 인생 한 악장 <소나티네>, 죽음을 앞둔 아내와 형사 남편의 마지막 여행을 따라가는 <하나비>, 헤어진 엄마를 찾아가는 소년과 건달의 동화 같은 로드무비 <기쿠지로의 여름> 등 종종 말없이 사색하는 절제된 영상의 감성을 끌어낸다.

오는 8일, 7시30분부터 열리는 공연의 주된 레퍼토리는 기타노 영화의 선율들이다. 히사이시 조에게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음악상을 안겨준 <소나티네>와 <하나비>를 비롯해, <키즈 리턴> <기쿠지로의 여름>, 그리고 최신작인 <브러더>까지 영화의 테마곡들을 들려줄 예정. 아쉽게도 미야자키 하야오와의 작업 증서에는 최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만 연주 목록에 올라 있다. 그 밖에 최근 그가 직접 감독한 현악 4중주단에 대한 영화 <쿼텟>, 98년 나가노 동계장애인올림픽 주제곡 <Asian Dream Song> 등을 연주할 예정. 재일동포로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은 지휘자 김홍재와 코리안 심포니가 협연한다. 그의 음악적 서정을 다 만날 순 없음에도, 스크린 밖으로 달려나온 선율의 생기를 놓치기는 아까운 기회다(문의: 크레디아 02-751-9606∼9610). 황혜림 blaue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