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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일본의 존재에 대한 사실적인 물음,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
이다혜 2008-02-21

히라노 게이치로는 스물세살이었던 1998년 문예지에 투고한 작품 <일식>으로 이듬해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그 한 작품으로 ‘미시마 유키오의 재래’라는 일견 과분해 보이는 칭찬을 받은 것은 역으로 이 젊은 작가에 걱정스런 시선을 떨구기에 충분했으나, 그는 개의치 않고 계속 소설을 썼다. 히라노 게이치로를 정의하는 지극히 문학적인 탐미주의는 <달>(1999년,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젊은 시인의 환상을 그렸다)과 <장송>(2002년, 19세기 중엽 파리에 살았던 쇼팽과 들라크루아, 조르주 상드 등 젊은 예술가의 삶을 이야기했다)으로 이어지면서 더 깊어졌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시대물에서는 비교적 고르게 좋은 평가(재미있다는 말은 못 들어도 의미있고 실험적이며 지적이라는 말은 들었다)를 받은 데 비해 현대물에서는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4년작인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은 그의 책 중 의미있는 방점이다. 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들은 전쟁, 가족, 죽음 등을 극히 전략적인 방식으로 소설화했다. 내용과 형식 모두가 하나의 거리가 되는 이야기들이다.

<갇힌 소년>의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소년은 다름 아닌 이 이야기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내용을 보는 대신 구조를, 형식을 보면 그 영원한 되돌이표를 발견할 수 있다. 데칼코마니처럼 앞뒤가 정확히 대칭인 문장들로 이루어진 이 단편은, 앞에서부터 읽어도, 뒤에서부터 읽어도 같은 이야기다. 의식하지 않고 읽으면 별 위화감없이 이야기가 끝난다는 점은, 형식에 집착하는 데 그치지 않기 위해 히라노가 어지간히 고심했음을 엿볼 수 있다. <빈사의 오후와 파도치는 물가의 어린 형제>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두 이야기의 끝문장을 통해 두 이야기가 공명한다. 하지만 그런 형식적인 특이점을 제외하고도 이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현대 일본의 헛헛한 일면이 구체적인 두 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해부되기 때문이다. 나른함이 공포로 끝맺는 이야기의 전개가 소름 끼치도록 현실적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될 법한 이야기는 카프카의 변신의 21세기 일본판이라고 할 수 있는 <최후의 변신>일 것이다. 히키코모리로 추정되는 주인공의 등뼈는 둥글고 ‘갑옷처럼 딱딱해’졌다. 그는 카프카의 <변신>을 다시 읽고 그 안에서 자신의 닮은꼴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문한다. “나는 요컨대 변신을 한 것일까?” <최후의 변신>은 카프카의 <변신>에 대한 소설인 동시에 현대 일본에서의 삶, 그리고 한 인간의 존재와 그 역할에 대한 물음이다.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을 읽은 뒤 히라노의 다른 책들을 다시 읽고 싶어지는 건, 그의 다양한 시도가 성공했다는 뜻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