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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던 사람을 더 좋아하게 만들 인터뷰, <그녀에게 말하다>

<무릎팍도사>의 기획은 매우 역설적이다. 스타의 고민을 해결해준다는 간판을 걸고, 스타의 치부를 집요하게 파헤치니 말이다. 김혜리의 인터뷰는 그런 면에서 <무릎팍도사>의 정반대편에 서 있다. 그녀의 인터뷰는 한 인물에 대한 무한한 호감에서 시작된다. 그녀의 글은 원래 좋아하던 인물을 더 열심히, 더 정성스레 좋아하게 만든다. 그녀는 스타의 고민을 해결한다기보다 스스로의 고민을 해결하는 구도자처럼 보인다. 인터뷰어가 던지는 질문의 화살이 마치 자기 자신에게 향해 있는 듯, 그녀의 질문은 애잔한 메아리가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간다.

김혜리는 스스로 자기 위치를 바꾸기 위해 살아 움직이는 블랙홀 같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지는 않지만, 인터뷰 상대의 숨소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무구한 집중으로 상대의 에너지를 빨아들인다. 그녀는 상대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를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비밀을 만들어내는 듯 보인다. 김혜리의 글 속에는 인터뷰의 모든 내용이 시시콜콜 드러나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여백 속에 둘 사이에 오고 간 눈빛과 표정의 잔영이 군데군데 숨어 있다. 드러난 말 뒤에 감춰진 언외언(言外言)의 그림자를 찾는, 숨은그림찾기 놀이가 독자들의 은밀한 즐거움일 것이다.

김혜리의 질문은 전혀 공격적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위력적이다. 그녀의 질문은 덫이나 그물처럼 직접적인 무기가 아니라 시나브로 빠져드는 깊은 늪처럼 상대를 젖어들게 한다. 그래서 상대는 자신의 마음이 털리는지도 모른 채 불현듯 그녀에게 마음 한 자락을 도둑맞곤 한다. 임현식의 사람 좋은 웃음 뒤에 웅크린 슬픔을 포착하는 질문은, 질문을 가장한 해답처럼 느껴진다. “요컨대 웬만하면 웃으시니까 그저 웃음만 거두셔도 보는 사람 마음이 쓰라려오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저 사람이 웃음으로 못 삭일 정도의 슬픔은 얼마나 클까 싶은 거죠.”(42쪽)

김혜리의 인터뷰는 앞이 무겁고 뒤가 가볍다. 그녀는 한 인물에 대해 치밀하게 준비한 방대한 정보들, 혹은 공들여 직조한 호의적인 선입견을 인터뷰가 끝난 뒤에는 툭, 털어버리고 오는 것 같다. 그녀의 인터뷰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빽빽한 내레이션으로 시작되어, 인터뷰이의 가벼운 마지막 답변으로 끝난다. 그녀는 모든 것을 담으러 갔다가 모든 것을 비우고 나오는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의 말처럼 그녀의 인터뷰도 엔딩이 없다. “나는 해피엔딩을 믿지 않아요. 엔딩이 어딨어? 나는 이야기는 끝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인터뷰는 독자의 마음속에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간직된다. 끝나지 않은 엔딩은 독자가 살아가며 채워야 할 몫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