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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를 돕는 유쾌한 데스 노트
최하나 2008-04-24

<더티 잡> 크리스토퍼 무어/ 민음사 펴냄

죽음 앞에서 크게 한번 웃어보시라. <더티 잡>은 한 전형적인 소시민이 우연찮게 죽음의 사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유머로 조리해낸 작품이다. 찰리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중고품 가게를 운영하는 평범한 남자. 하지만 아내가 딸 소피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숨을 거둔 뒤, 그의 삶은 불길한 방향으로 꼬이기 시작한다. 노트에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이 저절로 나타나는가 하면, 그 사람들이 하나같이 며칠 뒤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 찰리는 자신이 죽어가는 이들의 영혼을 수거해 원활한 윤회를 돕는 “더티 잡”에 채용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식료품 점원이 뱀파이어에게 반하는가 하면, 예수의 어릴 적 친구가 부활해서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등 그간 허무맹랑해 보이는 설정을 솜씨있는 유머로 가공해냈던 크리스토퍼 무어는 <더티 잡>에서도 특유의 장기를 발휘한다. 하수구에서 은밀히 지상 진출을 도모하는 죽음의 여신들에서부터 인터넷에서 데이트 상대를 구걸하는 이혼남, 양복을 상습적으로 훔쳐 입는 레즈비언에 이르기까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능청스레 넘나드는 풍성한 캐릭터들은 곳곳에서 돌출적이며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던진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긍정하는 시선은 익숙하지만, 작가의 번뜩이는 재치는 진부하지 않은 따스함을 전한다. 2006년 독자, 서점, 도서관이 통합 선정하는 퀼 어워드를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