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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순수이성비판>이 삼켰던 세상
이다혜 2008-05-15

<세상을 삼킨 책>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 랜덤하우스 펴냄

웃음에 대한 혐오가 <장미의 이름>의 사건을 낳았다면, <세상을 삼킨 책>은 제목 그대로 세상을 삼킬지도 모르는, 새로운 사상에 대한 두려움이 낳은 이야기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한입에 삼키기엔 다소 묵직해 보이는 소재로 보이지만,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는 비밀단체, 스파이, 예술, 문학을 철학에 버무려낸다. 1780년, 많은 제후국으로 분열되어 있던 어수선한 독일에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사건을 수사하던 의사 니콜라이는 장미십자회, 프리메이슨의 이름이 사건과 연관되었음을 알게 되지만 조사 중단을 명령받는다. 그즈음 니콜라이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된다. 장미십자회와 프리메이슨에 대한 이야기는 딱히 새로울 것도 없다. 이 책에서 정말 재미있는 것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태어나던 당시의 사회상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눈이다. <순수이성비판>이 가졌던 파급력의 실체를 좀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책이다. 다만 작가가 책 말미에 인정한 바대로 “<세상을 삼킨 책>을 발표하자마자 소설의 결말이 여기저기서 혼란을 일으켰다”는 점은, 소설의 원본과 완성본의 차이를 떠나 작가가 이야기를, <순수이성비판>과 그 시대를 완벽하게 손아귀에 넣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