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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최후에 가장 아름다운 꽃
이다혜 2008-05-29

<불안의 꽃> 마르틴 발저/ 문학과지성사 펴냄

소설가 배수아가 번역한 독일 작가 마르틴 발저의 2006년작. 이 책의 원제 ‘앙스트블뤼테’는 전나무가 이듬해 자신이 죽게 될 것을 감지하면 그해 유난히 화려하고 풍성하게 꽃을 피워 올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두려움으로 인한 만개. 노년에 찾아온, 존재를 뒤흔드는 사랑에 모든 것을 내준 한 남자의 이야기에 그보다 적합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성공한 투자상담가인 71살인 카를은 아내 헬렌과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 그는 투자를 원하는 영화감독과 여배우 요니를 만나게 되는데, 서른살의 요니와 사랑에 빠진다. 카를은 요니에게 극도의 집착을 보이지만 투자가 마무리되면서 그녀는 그에게서 멀어진다. 그의 아내 역시 그의 곁을 떠난다. 이 책이 보여주는 카를의 사랑은 비단 젊은 여자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투자상담가인 그는 투자의 효율을 극대화해 최고의 수익을 낳는 일에서도 만족을 느낀다. 아내 헬렌에게 쓴 카를의 편지는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인데, 이 나이 든 남자가 자신의 욕망을 아내에게 설득하고 해명하기 위해 늘어놓는 이야기는 사랑을 하는 인간의 실존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지극히 통속적인, 나이 든 남자의 젊은 연인에 대한 집착에 다름 아니기도 하다. 그 한가운데 죽음과 관계없이 타오르는 생물체 특유의 욕망과 슬픔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