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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스케치> O.S.T
2001-11-29

젊음의 자가당착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에 나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에 대해 미국의 ‘X세대’가 주류영화적인 어법으로 대답한 영화가 바로 <청춘 스케치>(Reality Bites)라 할 수 있다. 왜 ‘주류적’이냐 하면, 헤헤, 대답은 간단하다. 비주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왜 비주류적이지 않으냐, 헤헤, 대답은 다시 한번 간단하다. 주류적이기 때문이다.

주류적이라 함은 그 대답에 대하여 좀더 래디컬하게 의미부여하기보다는 ‘스타일’로 접근하는 태도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이 영화는 스타일로 접근한다. 미국의 ‘X세대’는 뭐 하는 애들이냐, 여피의 뒤안길이라 할 수 있다. 클린턴이 집권하기 이전의, 어려웠던 때의 미국의 젊은이들이 바로 ‘X세대’ 미국인들이다. 그들은 일자리가 없다. 그리고 일자리를 얻어 열심히 살아보려 했던 전 세대의, 기본적인, 삶에 대한 (그들 나름의) 열정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이다. 그들의 전 세대는 그런 X세대의 태도를 퇴폐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전 세대의, 사회에 열정적으로 속해보고자 하는 태도 자체를 퇴폐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전 세대의 선택, 그것은 평생을 샐러리맨으로, 노예 상태로 사는 길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뻔한 길 앞에서 고민한다. 아니, 사실은 그 뻔한 길이 그들 앞에 빨간불을 켜고 있다. 그것이 바로 미국의 X세대가 놓인 상황이다. 그 X세대가 택한 음악이 이른바 얼터너티브 록이다. 얼터너티브 록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팝의 세상에 속하고 싶어하는 자신의 표현이고 또 한편으로는 팝의 세상에 속하는 자기 자신을 감각적으로 혐오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청춘 스케치>는 그러한 X세대의 마음을 표현하는 음악으로서의 ‘얼터너티브’를 주류 팝의 입장에서 재정리하고 있다.

얼터너티브 록에 대한 좀더 급진적인 정의법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을 듣고서 ‘이것은 얼터너티브의 쓰레기’라고 말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얼터너티브 자체가 ‘이런 쓰레기의 마음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솔직히 말해 할말이 없다. 그렇다. 그들은 80년대의 하드코어 펑크는 아닌 것이다.

<청춘 스케치> 같은 ‘트렌드 영화’의 운명은, 십년만 지나도 오래된 영화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운드트랙도 오래된 사운드트랙이 되었지만 어쨌든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당대의 얼터너티브한 주류’라는 굉장히 아이로니컬한 상황 자체를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듣기가 그리 따분하지 않다. ‘얼터너티브한 주류’라는 말 자체가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미국의 한 세대의 선택이라는 걸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 팝이 어느 정도로 자기 자신의 영역을 확대하느냐에 관해 그 시대의 미국의 팝문화로부터 많은 것을 충격적으로 배운다. 정말, 팝은 자기 목숨에 칼을 들이 대는 것들조차 팝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들에게나 우리에게나 ‘기억’이다. 좀 감상적으로 말하면 ‘추억’이다. <마이 샤로나>는 그들 X세대의 십대를 구성하는 팝이다. 흥겹다. 그리고 <다이노서 주이어>는 그들 자신이 팝화된 꼴을 보는 흥겨운 슬픔이다. 크라우디드 하우스, 레니 크레비츠, 심지어 U2의 노래까지도, 팝은 얼터너티브와 그 경계를 문제삼지 않고 게걸스러운 식욕을 자랑하며 먹어치운다. 문제되는 것이 있다면, 지금 문제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들이 여전히 아름다운 멜로디를 자랑한다는 사실, 그 단 하나다. 아름다운 사운드 트랙은 그래서 그 안에 역사적인 우울을 문제삼지 않으면서 문제삼는다. 노래들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노래들의 운명이.

성기완/ 대중음악 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