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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팔계 랩에 맞춰, “치키치키 차카차카∼”
2001-12-20

<날아라 슈퍼보드> 5탄

설마 그곳에서 사오정을 만나게 될 줄이야. 보랏빛 피부에 천진난만한 표정. 안국동 참여연대 사무실 입구에 서 있는 건 분명 사오정이었다. 사람보다 크게 만들어진 이 모형은 국민의 소리를 못 알아듣는 정부를 상징하고 있었다. <날아라 슈퍼보드>의 위력을 새삼 깨달은 순간이었다.

1990년 KBS를 통해 처음 방영된 <날아라 슈퍼보드>는 방영 초기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당시 시청률은 42%. 얼마 전까지 최고의 인기를 모았던 <포켓몬스터>의 시청률이 약 20%였음을 상기해보면 실로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제작사인 한호흥업 역시 예상치 못한 인기에 어리둥절했다고 하니, 기실 사람 마음을 휘어잡는 건 치밀한 계산이 아니라 플러스 알파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허영만 원작 <날아라 슈퍼보드>는 2001년 10월19일, 이윽고 5탄 방영을 시작했다. 이번 환상여행편은 애니메이션을 위한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구성됐다. 매주 금요일 오후 5시30분에 방영되는 5탄에는 새로운 캐릭터가 가득! 스타킹 삼총사와 훔치리, 사오순 등은 물론 에피소드마다 참신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응아 요괴부터 삐에로 요괴까지 이름도 다양하다.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 삼장법사도 여전히 건재하다. 저팔계는 래퍼로 대변신했다.

이전 시리즈가 옴니버스를 새롭게 구성한 것이라면 5탄은 설정과 분위기에서 적극적인 변신을 꾀했다. 점잖은 삼장법사가 저팔계의 랩에 맞춰 춤추는 것은 일도 아니다. 미워할 수 없는 악당 스타킹 삼총사와 훔치리가 가세하면서 삼장법사 일행은 더욱 복잡하게 얽혀들게 되는데, 그걸 지켜보는 재미야말로 만만치 않다. 화면도 한층 깔끔해진 느낌. 장르는 여전히 코믹액션을 표방하고 있다.

5탄의 매력은 역시 캐릭터다. 일행이 타고 다니는 고물차 숭구리는 비겁해서 적이 나타나면 제일 먼저 숨는다. 생명의 나무라는 우르봉은 여신 같은 외모를 지니고 있지만 엄살과 거짓말이 심하다. 돌연변이 대마왕 지지웩은 전형적인 악당. 오히려 그의 부하들이 감초 역할을 한다. 훔치리는 삼장법사 일행이 가장 골머리를 앓는 악동이다. 그의 기회주의적인 성격으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만만치 않다. 재미있는 외모를 지닌 스타킹 삼총사. 이름처럼 출처를 알 수 없는 스타킹을 쓰고 있다. 이들의 대책없는 충성심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어느새 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정리하자면 조연이야말로 5탄의 매력이라고 감히 말하는 바, 고매하신 주연들께서는 분노하지 말아주시길.

‘새천년 감성’을 덧입혔다는 제작진의 말처럼 <날아라 슈퍼보드> 5탄은 처음과 비교해서 많이 달라졌다. 힙합식으로 리메이크한 주제곡도 새롭다. 시나리오에만 1년을 투자했을 정도로 기초도 튼튼히 했다. 그런데 아쉬워라. 13부작으로 구성된 시리즈는 어느새 다음달 초에 끝나게 된다.

빨라지는 시간대, 줄어드는 편성 비율.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국내 TV 애니메이션 현실을 보고 있자니 과연 <날아라 슈퍼보드> 6탄을 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방송사 사장님들, 한국 애니메이션 많이 좀 방영해주세요. 시간도 조금 늦춰서요. 설마! 지금 사오정 포즈 취하고 계신 건 아니죠? 김일림/ 월간 <뉴타입> 기자 illi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