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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와 준> O.S.T
2001-12-20

담담한 일상 속의 광기

아주 강렬하다고 할 순 없어도 오랫동안 기억 속에 잔잔하게 남아 있는 영화 중에 <베니와 준>이 있다. 이 영화는 정신병을 앓는 준과 사려 깊은 그의 오빠 베니, 그리고 그들 사이에 끼어든, 희극적이고 약간은 비정상인 샘 사이에 벌어지는 심리적 갈등과 해결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가족 사이에 존재하는 아픔을 섬세하고도 따뜻한 시각으로 관찰한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매력을 발휘하는 배우는 역시 조니 뎁이다. 그는 우스꽝스러운 희극배우와 우울한 멜로배우의 역할을 한몸으로 해냄으로써 그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연기의 영역을 개척해내고 있다. 샘이 보여주는 버스터 키튼 스타일의 슬랩스틱코미디는 현실 바깥에, 정상적인 일상 바깥에 존재하는 외로운 예술의 상징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것만이 준을 정신병원의 철창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다. 예술은 그렇게 사실들로 너무나 꽉 차 있어서 도무지 움직일 틈도 주지 않는 현실에서 한 걸음 빗겨 나와 있는 바보스러운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거리만큼의 자유로움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전망을 제시한다.

이 영화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맡은 라켈 포트만은 여성 작곡가 중에서 가장 활동이 활발한 영화음악 작곡가로 꼽을 수 있다. 영국 출신의 그녀는 웨인왕의 유명한 영화 <스모크>에서 음악을 담당했고 1997에는 더글러스 맥그래이스의 <엠마>를 통해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탄 사람이다. 건반 선율과 오케스트레이션의 배합을 주무기로 삼는 그녀는 <베니와 준>에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슬픈 여운이 살아 있는 음악으로 관객의 심리에 적절히 다가가고 있다. 메인 테마를 들어보면 도입부에는 어딘지 약간 신경증적인 키보드 선율이 깔린 느린 3박자로 시작하다가 곧 1920년대 슬랩스틱코미디에 흔히 배경으로 깔리는 딕실랜드 재즈풍의 4분의 2박자의 리듬을 채택하고 있고 그 위에 클라리넷의 감상적인 주제 선율을 얹어놓고 있다. 그 선율을 오보에가 받으면서 브라스가 등장하고 음악은 더욱 희극적인 느낌에 다가간다. 전반적으로 그녀는 묘하게 희극적인 느낌 가운데 슬픔의 여운 같은 것을 잘 배합함으로써 음악이 성공적으로 영화에 붙도록 만들고 있다.

그의 음악 외에도 몇곡의 선곡된 노래들이 영화의 분위기를 살려주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노래는 영화의 도입부에 나오는 <I’m Gonna Be(500 Miles)>이다. 프로클레이머스가 부른 이 노래는 평범하고 스트레이트한 미국식 록으로 들린다. 어떻게 보면 조금 상상력이 부족한 노래라 할 수 있는데, 그런 느낌 자체가 영화의 담담한 톤과 별 무리없이 어울린다.

또 베니가 자기 동생 준과 샘의 사랑을 눈치채고 갈등할 때 나오는 노래 <Can’t Find My Way Home>도 인상적이다. 원래는 스티브 윈우드가 만든 노래로 전설적인 록그룹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의 앨범에 수록되었던 노래를 조 코커가 다시 부른 버전이 영화에 실려 있다. 영화의 가사처럼 오빠 베니는 집에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철길 주변을 이리저리 배회하는데, 조 코커의 절절한 목소리가 오빠의 그 심정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노래는 O.S.T 앨범에는 빠져 있다. 하지만 O.S.T는 그 노래가 빠져 있는 대로 들을 만하다. O.S.T를 너무 상업적으로 개칠하지 않아서 좋다. O.S.T를 들으면서 영화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도록 만드는 이런 O.S.T에 더 정감이 가는 사람이 꼭 나만은 아닐 것이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