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현대문학> 2002년 1월호 통권 565호
2002-01-10

문단의 주소

지난해에는 시를, 강제로 쓴 행사용 몇편말고는 단 1편밖에 쓰지 못했다. 아니 그것도 좀 찝찝하다. 그것도 청탁자의 정성은 가상했지만 내 동기가 불순했으니 ‘순수한 자진’의 발로라 할 수 없고, 활자로 인쇄된 걸 보니 내용도 분량도 영 시원찮다.

신년 벽두부터 웬 자해성 자기 시(詩) 광고? 사정 및 경위는 이렇다. ‘손에서 시가 영 뜸하여’ 월간지 청탁들을 서너달씩 넘겼더니 <현대문학>의 목소리 예쁜 편집부 직원이 꾀를 낸다. 이건요, 다음달 청탁이 아니라 내년 신년호 기획용 청탁인데요…. 그런 전화가 온 게 마감 5개월 전이었고 나는 마치 결의를 하듯 청탁을 받아들였다. ‘신년기획’은 내 허영심을 부추겼고 ‘5개월’이라는 시간은 상당한 여유감을 풍겼다. 하지만 좀더 큰 이유는 신년호 권말부록 ‘문단인주소록’. <현대문학>의 문단인주소록은 해가 거듭될수록 권위와 정확도를 질적-양적으로 높여 이제는 독보적인 사전-자료의 입지를 굳힌 터다. 오로지 그것 때문에 ‘신년호’는 판매부수가 평소의 갑절을 웃돈다는 소문이다. 그 호에 시를 실으면 그 주소록이 저절로 공짜 아니겠는가. 그 신년호가 왔다. 그런데 앞머리에 ‘<현대문학>을 돕는 글’이 실려 있다. ‘심각한 경영난’, ‘심각한 위태로움’, ‘만성적인 적자’, ‘후원모금-정기구독 입금계좌’ 등의 문구가 담겨 있는 이 글의 ‘서명자’는 문화-문학 각계의 대표적인 인사들이다.

문학단체 기관지의 문학적 질이 두루 좋을 수는 없다. 지면을 고루 안배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가 이문구는 그랬었다. 부수에 상관없이 잡지만으로는 적자다…. 단체와 무관한 잡지 운영자들은 그렇게 이구동성이다. 또 하나. 평론가 유종호의 말을 과장하자면 한국문학은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다.

<현대문학>의 역사는 6·25전쟁 이래 ‘오른쪽으로’ 굴절된 남한의 정황을 그대로 반영한다. ‘문학단체 기관지’ 수준이었던 시절도 오래 이어졌다. 그러나 ‘1997년 새로운 편집진과 편집체제로 내면적-외면적 자기 혁신을 꾀한’(‘돕는 글’) 것은 조용한, 그러나 ‘자진의 발로’였기에 매우 소중한 문학-잡지사적 사건이었다. 주역은 양숙진 주간.

주소록에 올려진 문인 숫자는 2천여명. 우선 이 많은 문인들부터 ‘읽는’ 쪽을 택하면 어떨까? ‘정기’라는 용어의 강제성이 싫어서 정기구독을 좀체 안 해왔지만, 우선 나부터 그래야겠다. ‘문단의 주소’가 질 높은 ‘문학의 지형’으로 바뀌기를 원하면서.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