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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놀지 마시고 원고를 써주세요
이다혜 2016-12-26

<중쇄 미정> 가와사키 쇼헤이 지음 / 그리조아 펴냄

기분이 좋지 않다. 글은 작가가, 디자인은 미술팀이, 인쇄는 인쇄소가, 판매는 서점이 하는데 편집자는 중간에서 심부름을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몰이해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편집자 부부가 주인공인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 <A2Z>는 인기 작가를 섭외하기 위해 부부 사이에도 경쟁하는 모습이 등장했다. 마쓰다 나오코의 <중쇄를 찍자!>는 만화 원작이 드라마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며 팔리는 책을 만들기 위한 신참 편집자의 고군분투를 현실적으로 보여주었다. 가와사키 쇼헤이의 <중쇄 미정>은 소형 출판사 편집자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다. 소형이라고는 해도 편집장, 부편집장, 고참 편집자, 주인공인 신참 편집자, 영업부장과 영업자까지 있다. <중쇄 미정>은 정말 하나하나를 다 짚어가며 말한다. ‘제시간’이라는 말에는 설명이 달려 있다. “많은 편집자가 늘 고민하는 문제. 한바탕 일을 치르고 난 뒤부터는 신기하게도 제시간에 맞춰 일을 한다.” 이 ‘제시간’이라는 것, ‘마감’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이 대체로 눈물과 한숨의 강을 이룬다.

<중쇄 미정>에서 가장 읽기 어려웠던 부분은, 편집자이기도 하지만 필자이기도 한 내가 가장 타인을 애먹였던 마감에 대한 ‘원고 받기’ 에피소드다. 원고를 안 보내는 필자와 통화를 하는 장면의 설명이 이렇다. “원고를 재촉하는 과정에서 저자의 억양, 호흡, 말투, 문자 답변 타이밍 등으로 원고 진척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어느 정도 편집 일에 익숙해지면 감이 온다. ‘아직 원고에 손을 안 댄 상황’은 ‘연락이 안 되는 상황’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다.” 편집장은 주인공에게 “저자에게 편집자의 사정을 들이대지 마”라고 가르치지만, 실제로 (나를 포함한) 세상의 수많은 ‘저자’들은 온갖 방식으로 편집자를 애먹이며 겨우겨우 마감을 한다. 편집자의 사정을 뻔히 알지만 원고가 안 써지는 필자의 사정이라는 것 역시 딱하기는 매한가지지만 <중쇄 미정>은 편집자의 입장에서 이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감 지난 지가 한참입니다. 놀지 마시고 원고를 써주세요.” 저자는 마작을 하는 중이다. 여기에 적힌 설명이 또 (너무 사실적이라) 기차다. “마감 지난 지가 한참인데 왜 아직도 기다릴 수 있는가 하면 마감이 늦어질 것에 대비해서 편집자들이 일정에 미리 여유를 두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까지나 늦출 수는 없기 때문에 편집자의 초조함도 서서히 더해간다.”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에서, 소형 출판사는 편집자가 모든 과정에 훨씬 많이 관여해야 한다. 다 알고 있는 과정이었는데도 이렇게 한권으로 읽어보니 한숨만 나온다. 그러니까 여러분 잡지를, 책을 더 읽어주세요, 더 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