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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몬테로소의 분홍 벽>
김수빈 사진 백종헌 2017-05-23

<몬테로소의 분홍 벽> 에쿠니 가오리 지음 / 아라이 료지 그림 / 김난주 옮김 / 예담 펴냄

“자니?” 만약 길에서 눈을 감고 있는 고양이 하스카프를 만나 이렇게 묻는다면 그는 점잖게 대답할 것이다. “꿈꾸고 있어요.” 날이 맑든 흐리든 배를 깔고 엎드려 있길 좋아하는 하스카프는 게으른 고양이로 자주 오해받는다. 하지만 요즘 하스카프는 정말 열심히 꿈을 꾸는 중이다. 그는 꿈을 꿀 때마다 나타나는 분홍색의 아름다운 벽에 매료돼 있다. 분홍색 벽이 몬테로소라는 마을에 있단 걸 알게 된 하스카프는 그 벽을 직접 보기 위해 몬테로소로 떠난다. 돌봐주던 부인과의 헤어짐은 아쉽기만 하고, 언제 사자를 만날지 몰라 하스카프는 늘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꿈만 꾸던 세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설렘보단 못하다. 하스카프는 어느 중년 부부의 열기구에 올랐다가 도로 위 자동차에 무임승차하기도 하며 목적지로 찬찬히 나아간다.

에쿠니 가오리는 <냉정과 열정 사이> <반짝반짝 빛나는> 같은 작품으로 익숙한 소설가다. <몬테로소의 분홍 벽>은 그가 쓴 짧은 동화에 아라이 료지의 그림을 얹은 분홍색 그림책이다. 주인공의 이상향처럼 그려지는 몬테로소는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여느 모험담이 그렇듯 여정은 순탄치가 않지만 하스카프는 자신처럼 터무니없이 꿈꾸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속보이는 거짓말도 너른 마음으로 안아주는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방향은 자꾸만 틀어지고 목적지는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막막해도 하스카프는 길에서 보고 들은 것들로 자신만의 세계를 넓히며 나아간다. 인생에서 어떤 결단을 내리는 행위, 그리고 그 결단을 실행에 옮기는 주저 없는 태도, 여정을 지탱하는 단단하면서도 열린 마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풍족해진다. 글의 오른쪽에는 아기자기한 디테일이 콕콕 박혀 있는 그림이 함께한다. 주황색 태양, 파란 바다, 녹색 숲, 분홍 벽. 광량이 풍부한 곳에서 이 책을 펼쳐들면 오른쪽 그림의 진한 색감이 금세 왼쪽 글에 담뿍 녹아드는 광경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길 위에서, 하스카프

정말 애틋한 이별이었다. 하지만 하스카프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별의 인사로 부인의 발을 날름 핥고, 항구를 향해 씩씩하게 걸어갔다.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몬테로소에 갈 거야.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포기도 해야 한다는 것쯤 나도 잘 알고 있어.(7쪽)

걷다가 지치면 때로 자동차를 얻어 탔다. 자동차 병이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어서 가끔 자동차를 타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다고 맥없는 목소리로 말하면, 대부분의 운전자는 차를 태워주었다. 하스카프는 거짓말을 참 잘하는 고양이니까. 하지만 아픈 척을 하기도 귀찮을 때는 그냥 자동차 지붕에 폴짝 올라탔다.(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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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 도서 <몬테로소의 분홍 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