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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지 본 <레이지 다이어리> & 타카피 <플라이 하이>
2002-05-08

그들의 전략, 영화에 `붙어라`!

인디 밴드한테 가장 큰 고민은 홍보, 마케팅이다. 기껏 음반을 만들어도 잘 알려지기가 힘들다. 변변한 마케팅 전략도 없다(사실 배부른 소리다). 인디 음악 향유층이 두텁지 않기 때문에 ‘평범한 가요 팬’에게 어느 정도 호소해야 ‘성공’할 수 있다. ‘성공’이라는 건 딴 게 아니라(이를테면 떼돈 버는 게 아니라) 다음 음반을 만들 수 있는 여력, 그때까지 줄기차게 활동할 수 있는 여력을 갖는 것이다. 경우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음반 장수로 따지자면 5천장에서 1만장이다. 그런데 5천명에서 1만명에게 ‘이런 밴드, 이런 음악도 있다’고 알리는 것마저 쉽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디 계열에 포함시킬 수 있는 두 펑크 밴드, 레이지 본과 타카피는 제법 흥미롭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램 중 ‘인디 밴드와 한국영화의 조우’라는 게 있었지만, 레이지 본과 타카피도 해당사항이 있다. 루시드 폴, 어어부 프로젝트, 별 같은 밴드처럼 영화음악 전체를 맡은 건 아니지만, 여러 영화에 곡들을 끼워넣음으로써 밴드의 존재와 노래를 알려왔다. 제작비 덩치가 꽤 커진 한국영화에 ‘붙어서’ 홍보와 마케팅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영화제작자쪽에서도 큰 부담이 없다. 비싼 작곡가한테 가지 않고도 적은 비용으로 영화와 제법 어울리는 삽입곡을 얻을 수 있다면 말이다. 곡이 떠서 영화에 도움된다면 그건 덤이고.두 인디 밴드(의 제작자)는 이를테면 마케팅 ‘전략’을 가지고 움직여왔다. 그래서 음반 발매는 밴드 활동기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다. 음반 발매를 본격적인 밴드 활동의 시작점이 아니라 상승점으로 삼은 것이다. 일단 영화를 통해 이름을 어느 정도라도 알리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음악의 대중적 호소력이 문제가 될 텐데…. 먼저 레이지 본은 홍익대 앞 펑크 클럽인 드럭의 식구다. ‘인디 스타 밴드’ 크라잉 너트와 세트로 활동하는 데 따르는 무시할 수 없는 프리미엄도 홍보와 마케팅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맨땅에 헤딩에 비하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경우인가?). 레이지 본의 음악, 이른바 스카 펑크는 빠른 레게 리듬과 펑크 기타를 결합한, 한마디로 흥겹고 시원∼한 음악이다(덥고 짜증나는 여름에는 그저 스카 펑크가 최고라는 게 내 지론이다). 스카 펑크 특유의 찰랑거리는 기타 소리, 기본 두 박자를 바탕으로 변화무쌍한 템포, 쭉쭉 질주하는 관악기 소리를 듣고 있자면 마음은 해변이다. 보지도 않은 영화 이름 주워대기가 민망하지만 <신라의 달밤> <교도소 월드컵> <킬러들의 수다> 같은 영화에서 속도감 있게 질주하는 장면에 나왔음직하다. 이미 발표되었던 <큰푸른물>이 가장 뛰어나기는 하지만 솔로 데뷔 앨범 <레이지 다이어리>에 수록된 열일곱곡이 비교적 고르다. 치킨 헤드 등 여러 인디 밴드를 거친 멤버들로 이루어진 타카피는 영화음악 제작사인 M&F의 레이블에서 제작된 밴드답게 <교도소 월드컵>에 일곱곡을 집어넣으며 한국영화와 전면 조우했다. 펑크 특유의 간명한 구성, 기타로 ‘쌔리는’ 씩씩한 리듬, 쉬운 멜로디는 기본이지만 가사를 재치있게 풀어내고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무리없이 흡수한다는 것이 타카피의 자랑거리다. <조폭 마누라>에 등장했던 <김두한>이나, 역시 스카 펑크곡인 가 베스트 트랙. 이정엽 evol21@wepp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