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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지문>
진영인 사진 백종헌 2021-04-20

이선영 지음 / 비채 펴냄

자매 이야기는 소설이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 부모가 같다고 해서 똑같이 살라는 법은 없으니, 둘이 어떤 인생의 궤적을 그려가는지 운명이 어떻게 다르게 흘러가는지 관심이 간다. <지문>에도 자매가 등장한다. 둘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가 이혼하면서 성도 달라지고 삶도 달라진다. 외모도 비슷하고 성격도 닮은 두 사람이 35살이 된 지금, 언니 윤의현은 전도유망한 영화사에 작품 판권을 파는 데 성공한 소설가이자 대학 강사로 살고 있으나 동생 오기현은 거의 갇혀 살다시피 하다가 행방불명되었다. 윤의현은 실종 신고를 하고, 얼마 뒤 오기현이 산속에서 변사자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제 윤의현이 할 일은 외롭게 살아온 동생이 왜 죽었는지, 혹시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면 범인이 누구인지 언니로서 정의롭게 밝혀내는 것이다.

<지문>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자료 조사가 꼼꼼하다는 점이다. 변사자 신원을 파악하는 과정이나 시체 부패 과정에 대한 설명, 지문 확인 같은 과학적인 부분도 그렇고 지역 토호가 작은 마을에서 군주 행세를 하며 갈 곳 없는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모습, 상사의 부패를 알아낸 형사가 한적한 지역으로 전근당하는 일처럼 현실에서 자주 일어나는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설명도 그렇다. 이런 꼼꼼함은, 윤의현이 출강하는 대학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묘사에서 두드러진다. 정교수 승진이 유력한 문예창작과 교수가 습작 소설 지도나 으레 있는 술자리 같은 수단을 통해 여학생들을 괴롭히는 과정도 그렇거니와 폭로가 터지고 학생들의 수업 거부가 이어지자 잠시 몸을 숨겼다가 은근슬쩍 학과에 복귀를 꾀하는 모습도 그렇다.

피해자는 어쩔 수 없이 방송을 통한 공론화를 택하고 윤의현에게 도움을 청한다. “악이 선을 이기지 못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환한 빛 아래 숨겨진 어둠의 불씨가 너무 많았다.” 윤의현이 피해자 학생을 돕는 이야기 타래와 죽은 동생 사건의 미스터리가 풀리는 타래가 결말에서 촘촘하고 매끈하게 엮이는 부분에서 장르 소설 독서에서 느끼는 쾌감과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자매들

“일상생활을 함께하지 않았는데도 근본적인 성격이 비슷하다는 게 신기했다.”(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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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