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씨네21 추천도서 <내가 사랑한 동물들>
김송희(자유기고가) 사진 백종헌 2021-04-20

전순예 지음 / 송송책방 펴냄

지금 동물과 살고 있지 않더라도, 누구나 잊지 못할 동물과의 몇몇 추억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이름도 붙여주고 친동생처럼 같이 놀았지만, 잠깐 대문이 열린 사이에 집을 나가 영영 만날 수 없게 된 개 복실이, 할머니 집에 갈 때마다 만났던 크고 무서운 개 누렁이, 등굣길 나만 보면 컹컹 짖어 학교까지 뜀박질하게 했던 슈퍼집 개 해피, 동네 대장이었지만 낮잠만은 꼭 우리 집 담장 아래서 잤던 치즈색 고양이, 학교 앞에서 천원 주고 사왔는데 쑥쑥 잘 자라서 금세 푸드덕거리며 닭이 됐던 병아리 두 마리.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조차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준 동물들’에 대한 기억이 이렇듯 애틋한데, 강원도 어두니골의 동물 친화적인 가정에서 자란 전순예 작가는 사랑하는 동물들이 너무나도 많을 것이다.

1945년생 작가는 최초의 기억이 자리 잡은 순간부터 닭, 오리, 개, 돼지, 소까지 다양한 집짐승들과 어울려 자랐고, 산골에 살다 보니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부엉이 두 마리가 길을 비켜주지 않아 벌벌 떨면서 집에 온 일, 산에 가나 강에 가나 뱀이 나와 놀라 자빠지기도 한다. 어느 겨울방학에는 큰오빠가 학교 갔다 오다 다친 너구리 한 마리를 등에 업고와 뜨끈한 아랫목에 하룻밤 재워 보낸 일도 있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그 시절 어르신답게 영묘한 동물에 대한 덕담을 툭툭 던지시고, 반려견 워리가 출산을 준비할 때에는 어머니가 사골을 고아 먹이기도 한다. 말은 못하지만 말귀는 다 알아듣는 영특한 반려견 워리가 오리 새끼들을 강까지 몰고 갔다가 다시 데려오는 광경을 읽고 있으면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60살에 글을 쓰기 시작해 2018년 첫책 <강원도의 맛>을 출간한 작가가 그려내는 어린 시절 어두니골과 다수리의 풍경, 이 책에서 동물들은 단순히 ‘귀엽고 사랑스럽게’ 표현되지 않는다. 종이 다른 동물들이 제 개성대로 팔딱이고 생동한다. 어찌 이런 천국을 평생 품고 기억하였을까. 일흔이 넘은 작가가 풀어낸 알록달록한 기억들이 수십년 전의 것이 아니라 마치 오늘 쓴 일기를 훔쳐보는 듯하다.

위안이 되었습니다

시집 가족의 성격은 친정 식구들과 많이 달랐습니다. 사람들 성격만 다른 게 아니라, 짐승들 성격도 묘하게 달랐습니다. 짐승에게 먹이를 주는 방법도 짐승을 파는 방법도 달랐습니다. 모든 게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친정에서는 채소와 여러 재료를 썰고 다지고 끓이고 섞어서 주었습니다. 시집에서는 겨 따로, 물 따로 먹이를 주었습니다. 친정에서는 짐승들이 예쁘다고 착하다고 하면 눈을 껌뻑거리며 사람을 보면 웃을 줄도 알고 말귀도 잘 알아들었습니다. 굳이 줄을 매지 않아도 우리를 뛰어넘거나 말썽을 부리지 않고 잘 자라주었습니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일이 힘들어도 짐승들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고 사랑스럽고 위안이 되었습니다.(144쪽)

예스24에서 책구매하기
씨네21 추천도서 <내가 사랑한 동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