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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AN #2호 [피처/스페셜 포커스] 확장현실(XR)이라는 신세계 ‘비욘드 리얼리티’
정예인 사진 최성열 2022-07-08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특별 프로그램 ‘비욘드 리얼리티’ 속으로

영화는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긴밀히 관계 맺으며 100여 년간 점진적으로 발전해왔다. 홀로 감상하는 에디슨의 발명품 키네토스코프에서 함께 보는 시네마스코프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흑백필름에서 컬러필름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현재는 ‘관람’하는 영화가 아닌 ‘경험’하는 영화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 올해로 7년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확장현실(XR, Extended Reality) 작품을 소개하는 김종민 프로그래머는 XR이 미래의 콘텐츠가 될 것이라 예상한다. 고글을 닮은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를 착용해서 감상하는 XR은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등의 기술을 통틀어 칭하는 포괄적인 용어다. 김종민 프로그래머는 지금의 XR 콘텐츠가 발전단계로 치자면 영화의 초창기쯤에 와있는 듯하다고 설명한다. 아직 시장이 확보되지 않아 관람과 유통의 경로가 불안정하고, 소규모 혹은 개별적인 콘텐츠 제작에 치중된 경향을 보이는 등 XR을 둘러싼 생태계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수년간 꾸준히 XR 업계를 주시한 입장에서 볼 때 3개월 단위로 급격히 변화하는 기술과 비약적인 콘텐츠 질의 향상은 XR 콘텐츠의 전망을 밝게 비춘다.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특별 프로그램 ‘비욘드 리얼리티(Beyond Reality)’는 부천의 한국만화박물관과 현대백화점 중동점에서 동시 개최한다. 두 장소의 특수성을 고려해 작품을 분산 배치하고, 친환경 소재의 블록으로 부스를 설치해 키치한 미감과 편의를 모두 고려했다. 한국만화박물관에서는 기계 없이 즐기는 XR 작품을 비롯해 ‘확장된 경계’와 ‘비욘드 사이언스’ 작품을, 현대백화점에서는 공식 선정작을 만날 수 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유니티코리아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창작 인력 양성 프로그램 ‘BIFAN x Unity Short Film Challenge 2021’을 통해 선발·제작된 작품과 XR 창작자와 관객이 만나는 ‘BIFAN XR TALK’, 공연의 형태와 유사한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을 활용한 작품도 선보인다.

김종민 프로그래머는 세계의 XR 콘텐츠 레퍼런스를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상영작을 택했다고 전한다. 국내 영화제 중에서는 유일하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XR을 다루는 만큼 “주제적, 형식적 측면에서 탁월한 성과가 있는 작품들”과 광범하고 다채로운 스토리텔링을 구현한 콘텐츠를 우선 선발했다. 기본적 목표인 “관객과 아티스트들에게 영감 혹은 아이디어를 전하는 콘텐츠” 역시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구보, 경성 방랑_Kubo Walks the City

제네시스_Genesis

블랙 아이스_Black Ice VR

올해는 특히 ‘공간을 인식하는 방법’에 대한 콘텐츠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직접 가상현실 콘텐츠 속을 걸으며 XR의 세계를 경험해보는 작품인 <구보, 경성 방랑>과 <Augmented Shadow: 별을 쫓는 그림자들>은 각각 1930년대 경성과 그림자의 세계로 관람객을 인도한다. 이야기를 따라 찬찬히 걷다 보면 실제와 환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생경하면서도 유쾌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꾸려진 ‘비욘드 사이언스’ 섹션에서는 SF, 자연과학, 환경 등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내놓았다. 고대의 지구를 다룬 <제네시스>, 해저를 그린 <미지의 생명체>, 관람객이 직접 스토리에 개입하는 인터렉티브 시네마틱 VR <블랙 아이스> 등은 인간이 닿기 어려운 세계를 대신 경험케 한다. 바로크 예술가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의 이야기를 담은 <(Hi)Story of a Painting: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미국 9·11 테러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9/11: 생존자의 기록>, 조현병 진단을 받은 남성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골리앗>, 2018년 1월 하와이에 전해진 핵 위협 메시지에 관한 작품 <아침에 눈을 떠 종말을 맞다>, 프랑스·영국·대만·룩셈부르크·한국이 공동 제작한 VR 다큐멘터리 시리즈 <미싱 픽쳐스> 3편 등 상흔과 기억, 신화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콘텐츠도 주목할 만하다.

9.11_ 생존자의 기록 Surviving_9.11_ 27 Hours Under the Rubble

골리앗_Goliath_ Playing with Reality

미싱 픽처스_ 몽키 렌치 갱_Missing Pictures_ The Monkey Wrench Gang

“XR 콘텐츠는 우리 삶과 더 가까워질 것이다"

김종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XR 큐레이터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XR을 소개한 지 7년 차에 접어든다. 이번 ‘비욘드 리얼리티’ 섹션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올해로 7번째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전시는 매해 어렵다. 기기와 콘텐츠 퀄리티, 작품의 형식이 매 순간 변하고, 그에 따라 공간 구성도 달리 해야 하는 측면이 있어서다. 영화는 평면이지만 XR 콘텐츠는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작품이다. 때문에 부스를 비롯한 공간을 콘텐츠에 맞춰 장식하고 배치하는 게 중요하다. 엑스포처럼 부스를 설치하게 되면 관람객은 어떤 콘텐츠를 즐긴다는 느낌보다 새로운 기술 자체에 먼저 주목할 수 있다. 공간이 XR 콘텐츠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거다. 이번에는 한국만화박물관과 현대백화점, 각 공간에 맞게 구성해서 XR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 <제네시스>나 <블랙 아이스> 등 한국어로 더빙한 XR 콘텐츠가 눈에 띈다.

= 작품이 영어 혹은 타국의 언어로 되어있으면 적절한 반응을 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최대한 가능한 만큼 한국어로 더빙하고자 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XR 콘텐츠는 게임처럼 제작되다 보니 다른 영상물처럼 사운드 트랙이 별도로 있는 게 아니어서, 문장별로 파일을 만들어 원 파일에 배치하는 형식을 취해야 했다. 여러 과정을 거치다 보니 시간이 적잖이 소요됐다. 게다가 XR 콘텐츠는 배급·상영과 같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창구가 없어 많은 비용이 드는 더빙 작업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다. 다행히 올해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국어 더빙 및 자막 작업을 시도할 수 있었다.

- 아직은 전시회나 영화제가 아니면 XR 콘텐츠를 접하기 쉽지 않다.

= 처음에는 XR 콘텐츠를 상업화하기 위해 영화의 모델을 참고하려 했다. 하지만 XR 작품은 공간과 관련된 것이기에 2D 콘텐츠를 배급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보다 테마파크처럼 하나의 공간을 구성해 어떤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이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XR 콘텐츠가 ‘좋은 경험’이라 인정받으면 영화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대중이 적극적으로 찾을 것이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XR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그에 따른 수익화 진행 상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 결국 XR을 둘러싼 생태계 조성이 중요해 보인다.

= 그렇다. 많은 창작자를 양산하고 안정적인 수익화를 도모할 수 있는 XR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작년부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BIFAN x Unity Short Film Challenge 2021’과 같은 창작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자격이나 조건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문을 열어 다양한 창작물을 선보일 수 있게 한 것이다. 다행인 점은 XR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높고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과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메타버스나 버추얼 인플루언서 같은 디지털에 대한 대중의 리터러시가 향상됐다는 점이다. 상당한 기간이 걸리겠지만 점차 XR 콘텐츠는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