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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7호 [인터뷰] '괴인' 이정홍 감독, 사람과 관계로 만들어낸 영화의 리듬
이우빈 사진 박종덕 2022-10-12

<괴인> 이정홍 감독 인터뷰

생김새나 성격이 괴상한 사람. 이런 ‘괴인’의 뜻풀이에 ‘사람’ 대신 ‘영화’를 집어넣으면 <괴인>이란 작품에도 딱 들어맞는다. 이렇다 할 사건은 없고, 인물들은 속내를 통 드러내지 않으며 무엇을 원하는지도 쉽사리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영화는 주인공 기홍이 우연히 만난 소녀, 집주인과 집주인의 부인, 가족 및 친구들과 관계하고 살아가는 일상을 천천히 좇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별것 없는 인물들의 하루하루와 관계도임에도 영화에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기이한 힘이 <괴인>엔 서려 있다. 이건 바로 이정홍 감독이 무엇을 어떻게 찍을지, 영화의 리듬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에 치열하게 고민해온 결과물이었다. 첫 장편영화로 뉴 커런츠 섹션에 선정되고 2번의 GV(관객과의 대화)까지 마친 후의 그를 만났다.

- <괴인>은 특정한 주제나 형식으로 요약하고 설명하기가 어려운 영화다. 단도직입적으로, <괴인>으로 무엇을 보여주고 말하고 싶었나?

= 20대 후반~30대 초반 시절, 영화의 얘깃거리를 오랫동안 찾아 헤맸다. 그런데 진심으로 어떤 주제를 풀어내고 싶다거나 목소리를 내고 싶은 걸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특별할 것 없이 보편적이고 평범한 상태의 내게 가장 중요한 게 뭘지 생각해보고, 그걸 영화에 담아보고자 했다. 이를테면 난 왜 사랑하는 부모님에게 마음 깊은 곳의 얘기를 꺼내지 못할까, 나를 굉장히 아껴주는 친구를 조금 기만하면서 사는 게 아닐까 하는 것들, 그러니까 늘 어렵고 가끔은 공포스럽기까지 한 인간관계를 솔직하게 그려보려 했다. 또 <괴인>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떠올렸던 건 5~6년 전에 ‘욜로’라는 단어가 유행하면서였다. 개인의 주체적인 삶을 응원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외려 타인을 유심히 지켜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덜 중요해진단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런 현실을 관객이 극장에서 집중하면서 경험하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체험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 주인공 기홍은 전작 <반달곰>의 원석처럼 특별한 목적 없이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 특별한 욕망이나 진취적인 목적이 있는 인물이라면 이 사람이 어떤 성격이고 어떤 행동을 할지 예상할 수 있겠지만, 어떤 걸 하고 싶고 하고 싶지 않은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사람들은 더 많은 궁금증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 특히 집주인 정환의 과거와 속마음은 가장 파악이 어렵고, 그만큼 더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 먼저 직업적인 면에서, 정환은 자기 사업을 열정적으로 해보려곤 했으나 성격상 단단하게 임하진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속마음에 관해선 테니스장 장면에서 나오듯 부인과의 관계에서 인생의 아주 큰 공백을 느끼고 있을 텐데 그 공백마저 쿨하게 넘기려는 중이다.

-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한 것 같은데.

= 기홍과 친구 경준 역은 오랜 지인 두 명이 맡아줬고 다른 배역들도 오디션으로 만난 비전문 배우들이다. 인터넷뿐 아니라 가능한 모든 경로를 통해서 오디션 공고를 냈다. 대단지 아파트에 사는 인물 조감독이 2시간 동안 아파트 전체에 오디션 전단을 붙이기도 했다. 게시판 규칙 때문에 매주 다시 전단을 붙여야 해서 5~6주를 고생했다. 그 외에도 평소에 가는 식당이나 카페에도 무작정 전단을 뿌렸다. 그렇게 해서 1천 명 이상의 지원을 받았고 절반 이상을 직접 만나서 오디션을 진행했다. 비전문 배우라 할지라도 많은 분이 마음속에 연기에 대한 나름의 진지함을 가지신 분들이었기에 오디션 때부터 정식적인 대본 리딩을 거쳤고, 진지하게 배우로 대했다. 그래서 비전문 배우들의 출연 같은 걸 부각하고 싶진 않다. 촬영 현장에서도 배우들에게 제대로 된 도움이나 연기 지시를 주지 못했고 내가 한 거라곤 시간을 들여 기다린 것뿐이다. 배우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이뤄야 하는 상황을 계속 만들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 전작 <반달곰>과 다른 정적이고 절제된 촬영 방식이 눈에 띈다.

= 카메라의 테크니컬한 방법을 강조하기보단 촬영을 단순화하고 싶었다. 첫 번째 이유는 영화 속 인물들이 화면에 잘 보이길 원해서다. 동시에 낯선 집 등의 공간이 영화가 진행되면서 익숙한 공간으로 소개되길 바랐다. 그래서 관객들이 직관적으로 공간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길 바라며 촬영했다. 또 정해진 화면 안에서 배우들의 동선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무언가를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피할 곳 없는 공간 속에서 쭉 대화를 이어가길 바랐다.

- 주 배경인 기홍, 정환, 현정이 사는 집의 구조부터가 서로를 볼 수밖에 없는 형태라고 영화 속에서 언급된다. 촬영 취지에도 딱 들어맞는 느낌인데 로케이션을 정한 후에 시나리오를 집필한 건가?

= 우연히 산 정상 깊은 데 있는 전원적인 분위기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아래층과 위층 세대가 구분돼 있고, 중간 문이 있긴 하지만 현관을 같이 써야 하는 구조였다. 이렇게 좋은 환경의 좋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떤 불편함을 공유하면서 살 수도 있겠단 상상을 하게 됐고 영화에 적용하려 했다. 그런데 그 집을 쓸 수는 없는 상황이라서 전원적이고 예쁜 분위기에 세대가 구분된 집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한 지금의 로케이션은 원래 생각과 다르게 ㄷ자 구조라서 기존 시나리오를 로케이션에 맞게 수정하기도 했다. 조금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웃음) 공간이 이야기에 큰 영향을 주는 느낌이 재밌었다.

- 영화의 초반부,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연주를 듣는 사람들의 모습부터 길게 찍는 식의 독특한 컷 구성들이 많다. 정밀한 콘티를 짜고 촬영에 임하는 편인가?

= 콘티 없이 찍었다. 미리 열심히 준비하고 그걸 그대로 찍는단 마음으로 현장에 가면 실제 공간에서 더 좋은 방법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첫 촬영부터 아주 귀한 경험을 했다. 기홍이가 비닐봉지를 달랑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었는데 하루에 2번 있는 매직아워 시간에 찍어야 했다. 하루면 찍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4일이 걸렸다. (웃음) 매직아워 시간대를 놓쳐서 그런 건 아니다. 촬영 감독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지금껏 찍어본 어떤 사람보다도 기홍의 움직임이 빠르단 거다. 사실 콘티란 게 카메라의 배치도 정해야 하지만 편집의 리듬을 잡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런데 기홍 역 배우가 가지고 있는 어떤 속도감과 바이브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랐던 거다. 그 바이브에 대한 감을 잡는 데 4일이 걸렸다. 정환의 성향도 비슷하게 빠른 느낌이 있어서 영화 초반의 분위기가 그런 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마찬가지로 뒤에서 중요하게 나오는 하나와 현정은 반대로 여유로운 느낌이 있어서 촬영 현장이나 결과물에도 변화가 생긴 느낌이었다.

-<괴인>에 대한 감상에서도 영화의 리듬이 인상적이란 말이 많다. 영화에서 리듬이란 건 무엇이라 생각하나

= 모든 영화에 통틀어서 적용되는 리듬을 설명하긴 힘들 것 같다. 다만 <괴인>에서 리듬은 사건의 흐름, 인물들의 관계에 있다. 아주 큰 사건은 없지만 기홍과 주변 이웃, 가족, 직장 동료들의 관계가 계속 어떤 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만들고 얽혀가는 방식이 <괴인>의 리듬을 만든 것 같다. 그렇게 영화가 기홍이란 인물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점점 퍼져나가고 확장되면서 다양한 인물에게 영향을 주길 바랐다. 그렇게 우리가 혼자인 듯하지만 사실 다 같이 살아가고 있단 느낌이 느껴지길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