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JIFF Daily > 제 24회(2023) > 2023 전주국제영화제
JEONJU IFF #7호 [인터뷰] '도깨비불', '이 거리는 어디에 있나요?' 주앙 페드로 호드리게스, 주앙 후이 게라 다 마타, 판타지에도 현실은 필요한 법.
정재현 사진 박종덕 2023-05-03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를 찾는 시네필들의 관심작 리스트엔 대부분 현대 포르투갈 왕자의 퀴어 뮤지컬 <도깨비불>이 자리했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오랫동안 꾸준히 틀어온 파울루 로샤의 <녹색의 해>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이 거리는 어디에 있나요?>도 영화제 이전부터 관객들의 이목을 끌었던 작품이다. 두 영화는 모두 두 동명이인 예술가, 주앙 페드로 호드리게스(이하 호드리게스)와 주앙 후이 게라 다 마타(이하 게라 다 마타)에 의해 창조됐다. 1997년부터 함께 작업해 온 둘은 <이 거리는 어디에 있나요?>를 공동 연출로, <도깨비불>에선 연출 호드리게스와 작가 게라 다 마타로 협업해왔다. 두 편의 독창적인 작품으로 전주를 찾은 그들을 만나 각각의 작업기를 물었다.

- <이 거리는 어디에 있나요?>와 <도깨비불>은 모두 코로나19의 현실이 적극 반영돼 있다.

호드리게스 두 작품 모두 팬데믹 이전에 기획했다. 하지만 <이 거리는 어디에 있나요?>는 프로덕션 중 코로나19가 포르투갈을 강타했고, <도깨비불>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 프로덕션을 시작했다. 팬데믹 도중 만들어진 일련의 영화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비(非) 팬데믹 현실을 그리는 게 너무 괴상했다. 나는 우리의 영화가 어느 시대에 보든 언제 만들어졌는지 분명한 영화이길 희망한다.

게라 다 마타 사람들은 팬데믹이 거의 끝나가는 와중에 왜 아직까지 코로나19 이야기를 하냐 묻는다. 하지만 우린 코로나19의 이야기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게 무어든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에 관해 논의를 촉발하고 담론을 형성하는 게 문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최선책이다.

- <이 거리는 어디에 있나요?>는 파울루 로샤의 <녹색의 해>에 관한 오마주다. 둘에게 파울루 로샤는 어떤 의미인가.

호드리게스 파울루 로샤는 영화학교 시절 내 은사님이다. 또한 <녹색의 해>는 포르투갈 시네마 노보의 선두에 서 있는 영화다. <녹색의 해>는 포르투갈 독재 정권 당시 만들어진 영화들이 전혀 다루지 않던 소재를 작품에 담았고 그로 인해 포르투갈 영화사는 물론 세계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품이 됐다. 그리고 <녹색의 해>가 촬영된 리스본은 나의 고향이자 파울루 로샤의 고향이다.

게라 다 마타 파울루 로샤가 촬영한 모든 곳을 똑같이 찾았고 카메라의 프레이밍도 그와 유사하게 맞췄다. 우리 영화는 배우가 안 나오다 보니 내러티브가 전무하다. 그래서 대개 배우를 포착하는 카메라가 저 마음대로 움직이는 괴상한 영화로 보이기도 한다. 난 우리 영화가 다큐멘터리보단 에세이 필름으로 불리길 바란다. 또한 우리 영화는 <녹색의 해> 출연진 중 현재 유일하게 생존해 계신 배우 이사벨 루스에 대한 오마주기도 하다.

- 원작과 동일하게 이사벨 루스가 출연하지만 출연 방식이 전혀 다르다. 우선 원작과 달리 노래하는 뮤지컬 시퀀스가 두 차례 들어가고, 결말에 이르면 남성 주인공이 수행한 장면을 이사벨 루스가 재현하며 원작의 결말을 비튼다.

호드리게스 이사벨 루스의 현재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섭외 차 이사벨 루스를 집에 모셨는데, 직업 가수기도 한 이사벨 루스가 우리 앞에서 본인의 자작곡을 30곡이나 불렀다. 그 중 두 곡을 선정해 영화에서 부르게 한 것이다. 그의 첫 등장은 <녹색의 해>와 동일한 구도라면 두 번째 등장은 전혀 다른 구도다. <녹색의 해>와 전혀 다른 결말을 맞이하는 이사벨 루스를 통해 암울한 팬데믹의 현실에도 희망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 60년대 독재 정권 시절 젊은이들의 무력함과 공포가 팽배한 <녹색의 해>의 정서와 팬데믹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이 거리는 어디에 있나요?>가 어떻게 조응한다고 생각하나.

게라 다 마타 (단호한 말투로) 전혀 다르다. 죽음에 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은 공통적이지만 둘은 전혀 다른 비교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둘을 비교하려는 평자들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팬데믹과 달리 전체주의의 공포는 논리나 과학에 기댈 수 없지 않나.

호드리게스 말했다시피 우리 영화는 코로나 이전에 제작 계획을 수립한 영화다. 팬데믹 현실과 연관 지어지는 건 불가항력이라 생각한다. 말하자면 <이 거리는 어디에 있나요?>도 코로나19에 걸린 영화다. (웃음)

- <도깨비불>을 뮤지컬 판타지로 명명했다. 뮤지컬이 장르 구분에 등장하는 것은 십분 이해가지만 판타지는 의아하다. 이미 1910년에 폐지된 포르투갈 왕정이 영화 속에 잔존하기 때문일까.

호드리게스 이 영화에 관한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곳은 치과다. 치료를 받던 중 평소 절대 볼 일이 없는 연예 가십 잡지를 보았는데, 그 잡지에 왕가의 후손의 인터뷰가 실려있었다. 포르투갈이 공화국이 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왕족 운운하는 것이 너무 거짓말 같았다. 이런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판타지 아닌가. 영화의 초반부가 2069년에서 시작하는 점 또한 공상과학적인 요소여서 이 영화의 판타지가 성립한다. <도깨비불>의 장르 구분에 가져다 붙일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코미디다. 우스운 사람들이 우습게 살아가는 게 코미디가 아니면 무얼까.

- 영화 속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소방관 훈련생 동기들이 미술사 전공자인 왕자 알프레도를 골리기 위해 신체로 예술 작품을 재현하는 시퀀스다. 카라바지오, 루벤스, 프랜시스 베이컨 등의 작품이 인용되는데 왜 이 예술가들이어야 했나. 선정한 아티스트의 면면을 보면 이들의 파란만장한 사생활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호드리게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이다. 파울루 로샤 감독에게 영화를 배울 당시 회화를 통해 스토리텔링을 해나가는 방법을 배웠다. 영화를 만들든 그림을 그리든 우리는 과거의 예술들에 관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고, 무언가를 학습해야 한다. 과거를 알아야 새로운 것에 응전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표현할 수 있다.

- 영화에서 가장 많이 변주되는 노래는 포르투갈 동요 <나무, 친구>(Uma Árvore, um Amigo)다. 영화를 보면 나무와 친구 모두 알퐁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어떤 의도로 이 곡을 삽입했나. 알프레도가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는 걸 생각하면 묘하기도 하다.

호드리게스 원곡은 아이들에게 자연을 사랑할 것을 권유하는 노래다. 노래가 나왔을 198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환경 파괴와 이상 기후 이슈가 굉장히 갈급하다. 왕자 알프레도도 현재에 사는 인물이다 보니 세계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당연히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알프레도는 어린 나이에 숲에서 성적 욕망을 자각한 후 소방학교에서 알퐁소를 만나 사랑을 알게 되지 않나. 나무로 시작한 성적 자각이 실제의 사람으로 옮겨간 것을 직유하고 싶었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