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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AN #3호 [인터뷰] ‘내 심장을 받아줘’ 킴 올브라이트 감독, “심장을 준다는 건 내 전부를 준다는 것”
이유채 2023-07-01

<내 심장을 받아줘> 킴 올브라이트 감독

스마트폰이 정해준 대로 살면 되는 근미래의 직장인 애나벨은 튄다. 느끼는 대로 행동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급기야 무감각한 남자 조지에게 사랑을 느끼고서는 자기 심장을 준다. 몸 안에서 펄떡펄떡 뛰는 진짜 심장을 말이다. 뮤직비디오와 광고 작업을 해온 킴 올브라이트 감독의 장편 데뷔작 <내 심장을 받아줘>는 반드시 서로여야만 하는 러브 스토리이자, 시니컬한 유머가 작품 도처에 널린 코미디 영화이고, 아들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가족 드라마다. 화상 인터뷰 시작부터 환한 표정으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 킴 올브라이트 감독에게 첫 장편에 관한 대화를 청했다.

- 극작가 줄리아 레더러가 쓴 동명의 희곡을 장편 데뷔작으로 선택했다. 원작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나.

= 첫째로 이상하고 초현실적인 대안 세계란 배경이 마음에 들었다. 연극을 위해 만들어진 세계지만 그대로 영화에 가져와도 좋을 만한 세팅이었다. 둘째로 심장을 다루는 방식이 재밌었다. 신체 기관 중 일부가 아닌 하나의 오브제로 보고, 그것에 성격과 감정을 부여하는 컨셉이 신선했다. 의미적으로도 좋았다. 자기 심장을 떼어내서 상대에게 준다는 것은 내 전부를 다 준다는 뜻일 텐데, 그렇게 온 마음을 쏟는 일이 요즘 시대에서 힘들다 보니 감동적이었다.

- 줄리아 레더러는 각본 작업에도 참여했다. 협업 과정에서 주로 무엇을 의논했나.

= 2017년에 줄리아와 처음 만나 각색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촬영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예상보다 작업이 길어졌다. 스토리를 개발할 시간을 추가로 얻었다고 생각하고 더 긴밀히 일했다. 연극적인 요소들을 영화적으로 바꿀 방법에 대해 많이 대화했다. 연극배우들이 직접 대사를 주고받을 때 오가는 생생한 감정들을 어떻게 스크린에서도 그만큼 표현할지, 무대 공간에 몇 가지로 제시된 배경이나 소품을 어떻게 세세히 시각화할지 고민했다. 연극은 배우 몇몇이 이런 세계가 있다 치고 연기하고 관객들도 그걸 용인하지만 영화는 다르지 않나. 기술에 천착한 근미래 사회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구현해서 관객 앞에 내놓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 몸 밖으로 꺼낸 심장을 우리가 익히 아는 모양으로 디자인했고, 하이라이트일 수 있는 심장을 꺼내고 넣는 순간은 배우의 뒷모습을 찍어 보이지 않게 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 애초부터 화려하고 독특한 무언가를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 단순하되 우아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심장의 경우 이론적으로 납득할 만한 사이즈에 우리 눈에 익은 모양이면 적당할 것 같았다. 그래도 영화적 재미는 주고 싶어서 안에서 보라색 불빛이 깜박깜박하는 설정을 넣었다. 후반 작업에서 그 불빛을 디테일하게 살리느라 애를 먹긴 했지만 만족한다. 심장을 꺼내고 넣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인물이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그런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음악과 음향 효과만으로도 극적인 분위기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지금처럼 배우 주변에서 보라색 아우라가 폴폴 나는 정도가 난 딱 마음에 든다. 정면으로 찍었을 때 들어갈 예산을 생각해도 그 방향이 맞다고 판단했다.

- 보라색을 영화의 대표 컬러로 쓴 이유가 궁금했다. 영화가 독특한 분위기를 갖게 한 색 작업 전반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 엄청나게 지적인 이유를 대고 싶지만 사실 보라색은 줄리아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그는 보라색 재킷에 보라색 바지를 입고 다닌다. (웃음) 레오나르도 하림 촬영감독과 컬러 팔레트를 앞에 두고 나눈 대화의 핵심은 색깔로 도시와 캐릭터의 대조를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감정이 배제되고 건조한 도시에 사는 활기차고 통통 튀는 여성이란 이미지를 선명히 드러내고 싶었다. 그래서 도시 전체 톤은 회색으로 잡고 애나벨을 표현하는 색들은 다채롭게 갔다. 실제 촬영 장소인 밴쿠버가 워낙 회색빛의 조용한 도시라 본연의 색감을 살리기도 했다.

- 여자친구들끼리는 물론이고 상사와 부하직원까지 어떤 인물 관계에서든 코미디가 발생한다는 점이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이다. 코미디를 만들어내야 하는 입장에서 고충은 없었나.

= ‘이거 정말 웃기다, 된다!’라고 생각하며 쓴 회심의 대사나 신들이 실전에서 실패했을 때? (웃음) 애초에 캐스팅할 때 코미디 연기 경력이 충분한 배우들 위주로 뽑았기 때문에 수월한 편이었다. 카메라가 돌아가기만 하면 그들이 즉흥적으로 재밌는 순간을 많이 만들어냈다. 그런 놀라운 광경을 목격할수록 나는 말을 점점 줄여 나갔고 연기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최대한 손을 떼자는 데까지 이르렀다.

- 애나벨 역의 애나 맥과이어는 올해의 발견이라 생각될 만큼 매력적이었다. 연기하는 그레타 거윅이 연상되기도 했는데, 이 배우를 소개해 준다면.

= 정말 명석하고, 뭔가를 해보자고 운만 떼도 바로 뛰어드는 적극적인 스타일에 협력적인 배우다. 이런 애나의 무수한 장점을 알게 된 건 그가 내 단편의 주인공으로 출연했을 때다. 애나가 줄리아 작가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줄리아와 이번 영화를 작업하며 우리 둘 다 애나벨 역에는 그가 적역이라고 생각했고 이렇게 우리 셋이 뭉치게 됐다.

- 후반에는 애나벨에게 심장을 받은 뒤 자유분방해져 자기 곁을 떠나려는 조지를 원래대로 되돌리려는 엄마 모나의 이야기 분량도 상당하다. 남녀의 러브 스토리만큼이나 모자의 가족 드라마도 비중 있게 다룬 이유는 무엇인가.

= 희곡에서 모나의 비중이 큰 탓도 있지만 내가 두 아이의 엄마이다 보니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에 마음이 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조지 엄마도, 전화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애나벨 엄마도 자기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만큼 최선을 다해 양육하려고 하지만 도리어 그 과욕이 아이를 힘들게 하거나 관계를 망치잖나. 이런 흠결 있는 캐릭터에 공감할 관객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믿고 원작대로 밀어붙였다.

- 지금보다 더 기술에 의존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우리는 사랑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영화의 메시지가 심장을 울린다.

= 스마트폰 혹은 컴퓨터가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라 할지라도 그 무엇도 인간을 앞서거나 인간 위에 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애나벨처럼 가슴으로 때로는 조지처럼 머리로 생각하고 결정하면서 우리는 함께 삶을 계속 이어 나가야 한다. 내 영화를 본 관객이 휴머니즘의 희망을 품고 극장 밖을 나서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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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로비 클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