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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AN #4호 [인터뷰] ‘#맨홀’ 구마키리 가즈요시 감독 , 소셜 미디어의 명암을 담아
이유채 사진 백종헌 2023-07-02

<#맨홀> 구마키리 가즈요시 감독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다니는 예비 신랑 카와무라(나카지마 유토)의 인생에는 구멍이 없다. 대신 구멍에 빠진다. 결혼식 전날, 성대한 축하 파티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맨홀로 추락한 것이다. 그러나 좌절은 잠시뿐, 기지 넘치는 20대 청년은 SNS에 도움을 요청하는 계정을 만들어 살 길을 모색한다. <#맨홀>은 스마트폰을 활용한 생존법으로 독자적인 길을 가는 탈출영화다. 장르적 긴장이 내내 이어지는 이 영화의 진짜 공포는 탈출 불가가 아닌 사이버공간에서는 타인이 쉽게 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온다. 소셜미디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에 관심을 둔 구마키리 가즈요시 감독은 <#맨홀>이 뻔한 좌충우돌 탈출기였다면 연출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맨홀> 프로젝트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 영화 담당 프로듀서에게 제안받은 게 시작이었다. 오카다 미치타카라는 각본가가 지금 재밌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이 이야기의 연출을 맡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 글을 검토해 보니 좋았다. 일단 그동안 내가 작업해 왔던 작품들과는 결이 달라서 도전 의식이 생겼다. 탈출극으로 출발해 약간의 트위스트를 거쳐 후반부에서는 스릴러 성격을 갖는다는 점도, 지금 시대를 표현하는 내용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특히 요즘 사람들이 SNS를 어떤 식으로 활용해 삶을 살아가는지 사실적으로 담겨서 지금 찍는다면 시의적절할 것 같았다. 맨홀이라는 굉장히 좁은 물리적 공간에서 사이버공간을 끌어와 영역을 확보하는 방식도 납득이 갔고 이런 부분을 내가 연출하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 트위터 유저들이 집단 지성의 힘을 발휘해 카와무라의 위치를 찾는 과정이 상세히 묘사되고, 자신의 콘텐츠를 위해 그를 구하러 가는 유튜버가 등장하는 등 소셜미디어 사회의 명과 암을 두루 들여다본다.

= 카와무라가 아무래도 사람들이 소녀를 도와줄 확률이 높을 거라고 판단해 트위터 계정을 맨홀남이 아닌 맨홀걸로 만드는 장면도 있지 않나. 이렇게 성별을 바꿔서 SNS에서 활동하는 경우를 포함해 온라인에서의 타인 사칭 문제 자체가 일본의 현실 세계에서도 엄밀히 존재한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일본 영화계에서는 인터넷의 부정적인 면을 소재로서 많이 다루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직접 그런 문제의식을 가진 영화를 만들고 싶기도 했다.

- 맨홀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인공인 영화이기도 하다.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

= 거대한 창고 안에 세트를 만들었다. 맨홀의 길이가 8M인 설정이었는데, 그대로 구현하면 작업하기 불편하니 상부와 하부로 나눠서 따로 제작했다. 다리를 다쳐 앉아 있는 캐릭터의 상황 상 촬영 대부분은 하부에서 진행했고, 후반 작업 때 상하부 사이의 이음매를 CG 처리했다. 내부 공간은 어디선가 물이 흘러 들어온다는 설정인 만큼 축축한 느낌을 관객이 피부로 느끼게끔 신경 썼고, 오돌토돌한 텍스처를 쓴 내벽으로 현실감과 불쾌감을 주고자 했다.

- 맨홀의 깊이감과 남자의 고립감을 생생하게 담아낸 촬영이 인상적이었다. 츠키나가 유타 촬영감독과는 현장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 공간의 좁은 느낌을 어떻게 하면 잘 살릴 수 있을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사실 세트의 벽을 떼어낼 수 있는 구조라 촬영 공간을 비교적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는데 좀 편하게 찍으면 답답함이 잘 살지 않더라. 그래서 웬만하면 한정된 공간 안에서 찍자고 의견을 모았다. 나카지마 유토 배우에게 직접 가까이 다가가서 찍는 방법도 많이 썼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얘기가 많이 오갔다. 맨홀 안이라고 해서 계속 같은 톤으로 어두컴컴하면 관객이 영화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밝기에 미세한 변화를 주려고 했다. 갑자기 비가 오는 장면처럼 색감이나 밝기를 바꿔 볼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않으려 했다.

- 계속 차오르는 의문의 거품이 시한폭탄 역할을 해서 내내 긴장감을 안긴다.

= 하지만 찍기는 매우 힘들었다. 왜냐? 거품이 다 아날로그였기 때문이다. (웃음) 어린이용 이벤트 같은 데서 쓰는 거품 내는 기계를 공수해 실제로 거품을 만들었다. 당연히 나카지마 유토 배우도 그 속에 빠져서 연기했고. 맨홀 안에 들어차는 거품이니 좀 더러워야 해서 거품 안에 커피도 섞고, 가다랑어포랑 김 가루를 뿌리기도 했다. 오코노미야키 같은 냄새가 나서 배우가 아주 참기 힘들었을 거다.

- 혼자서 극을 끌어나가야 했던 나카지마 유토 배우는 당신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았을까 싶다. 주로 어떤 디렉션을 주었나.

= 이런저런 디렉션을 많이 주지 않았다. 당시 나카지마 배우는 비열한 모습도 보이고 완전히 망가지기도 하는 카와무라를 연기하며 아이돌 출신으로서 자기가 가진 이미지를 확실히 깨고 싶어 했다. 그만큼 촬영 내내 아주 의욕 충만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그가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걸 마음껏 해주길 바랐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이력서처럼 캐릭터의 인생사를 쭉 정리한 긴 글을 그에게 전해 준 것이 전부다.

- 화면에 트위터 게시글 같은 정보가 띄워지고, 다리 다친 주인공은 앉아서 SNS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자칫 그림이 밋밋해지거나 이야기가 지루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없었나.

= 사실 그 지점이 영화 찍기 전부터 가장 걱정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사전에 텍스트끼리의 배치 간격, 여백의 정도까지 치밀하게 계산했다. 글자 크기나 모양을 다양하게 바꿔 보기도 하고, 텍스트가 화면에 올라가는 찰나에 생기는 리듬감을 이용해서 재미를 주려고도 시도했다. 무엇보다 클럽 음악이나 그루브가 있는 음악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역동적인 느낌을 내려 했다.

- 결말에 이르면 맨홀 내부에 차곡차곡 쌓인 미스터리한 에너지가 폭발하는 실외 시퀀스가 짧지만 강렬하게 등장한다.

= 세트 촬영을 하는 동안 자칫하면 단조로워질 수 있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매 장면이 계산의 연속이었는데, 밖으로 나가니 자유를 얻은 것만 같아 마냥 좋았다. 그건 비교적 넓은 공간에서 몸을 다양하게 써 볼 수 있었던 나카지마 배우도 마찬가지였다. 내용은 심각했으나 연출하는 나도 연기하는 배우도 아주 신나서 전과 달리 오픈 마인드로 이것저것 시도해보며 시퀀스를 완성해나갔다.

-사소하나 <#맨홀>을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질문을 하고 싶다. 카와무라는 핸드폰 방전 문제를 전혀 겪지 않는다. 충전 100%인 상태에서 맨홀에 떨어진 건가. (웃음)

= 일본의 최신 폰들은 배터리가 굉장히 오래 가는 편이라고 해두자. (웃음) 많은 재난물에서 결정적 순간에 주인공의 핸드폰이 꺼지는 게 너무 뻔하게 느껴져 반대로 간 측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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