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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함부로 지어진 이름이 없다는 것, 그걸 알게 해주는 게 배우”
한겨레제휴기사 2022-07-04

[한겨레] 한겨레S - 유선애의 배우는 사람 : 배우 정영주

“도전이 두렵지 않고, 한번의 희열이 아홉번 좌절 이겨내게 해요” 뮤지컬·드라마서 활약 28년차 배우…여배우 10명 등장한 공연 제작도 “사람 마음 움직이는 연기 위해 어떤 삶에도 귀기울이고 마음에 담아요”

사진 윤송이 작가

“여배우라는 말 안 좋아해요. 그냥 배우. (중략) 여자 배우 열명 모으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여자 배우 열명 나오는 공연을 올리는 게 쉽지 않았죠.”

배우 정영주가 2019년 제3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남긴 수상 소감이다. 숨을 곳 없는 무대 위에서 자신을 단련하고, 드라마와 영화 안에서 비교 불가한 기세와 개성을 지닌 캐릭터로 대중에게 스며든 배우 정영주와 마주 앉았다. 그가 인생의 한 모퉁이씩을 더듬으며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끝내 자신으로 살아내고자 애쓴 우직함이, 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을 하며 발 디딘 세계를 바꾸고자 한 용기가, 좌절의 끝까지 내려갔지만 그 끝에서 다시 자신을 붙잡고 일어선 이의 단단함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바뀌는 게 없는데 ‘적당하다’는 말

―인터뷰를 준비하며 자료 조사를 많이 했는데요.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방대한 자료를 지닌 분이더라고요.(웃음)

“제 별명이 ‘버라이어티 정’이에요. 어릴 때는 ‘이벤트 정’이었거든요. 하도 사건 사고가 많아서. 지금 우리 회사(매니지먼트)랑 인연을 맺은 지 8년째 되고 있는데요. 대표가 맨날 물어요. ‘이 환난은 언제 끝나니?’(웃음)”

―최근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최종회에 카메오로 등장했죠. 짧은 등장이었음에도 말 그대로 ‘신 스틸’ 했습니다. 곧 40대를 맞이하는 여성에게 별다를 것 없는 50대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역할이었죠. “똑같아. 오십은 그렇게 갑자기 와. 난 열세살 때 잠깐 낮잠 자고 딱 눈뜬 것 같은데”라는 대사도 참 좋았어요.

“그러게요. 그거를 좋아해주시더라고요.(웃음) 새벽에 에스엔에스(SNS) 계정으로 메시지가 왔어요. 겉모습만 보고 그저 ‘센 언니’라고만 생각했다. 별로 안 친해지고 싶은. 근데 <나의 해방일지> 연기를 보니 그렇지 않은 얼굴도 있더라.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새삼 알려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시는데 아침부터 그 메시지를 보고 반성했어요. ‘나 대충 살면 안 되겠다’ 하고.”

―다양한 면이 있지만 제게 각인된 모습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배우’라는 말에 대한 생각을 피력하고, 준비된 자리가 아닌 곳에서는 노래하지 않는 뮤지컬 배우, 주로 남자 배우가 중심이 되는 관행에 맞서 여자 배우 열명이 등장하는 작품 <베르나르다 알바>를 제작한 이입니다.

“잔다르크 성향은 아닌데요. 복종과 순종, 이런 말을 쓰는 시대가 지나갔잖아요? 저는 그 말이 공기처럼 스며 있던 시대에 잠시 살다가 이리 넘어왔고요. 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주어진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그 용기가 환영받지 못한 시기도 있었을 테고요.

“그랬죠. 사람으로서, 여성으로서, 배우로서, 여자 배우로서 뭔가를 이야기하고 나서야 하는 순간에 ‘굳이 네가 이야기 안 해도 돼’ 하고 누군가 제 손을 잡고 꾹 눌러요. ‘누군가 할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근데 아무도 안 하더라고요. 어느 순간 아, 내가 손목을 잡혔던 것처럼 누군가도 똑같이 잡혔겠구나, 그리고 앞으로 ‘네가 안 해도 돼’라는 말을 듣는 일이 더 많이 생기겠구나 싶었어요. 그걸 깨달은 후부터는 ‘그래? 그럼 그 누구도 누구대로 하라고 해. 나는 나대로 할게’ 하게 되더라고요.”

―잡힌 손이 쉽게 뿌리쳐지던가요?

“성격이 급한 게 그때는 득이 됐던 거 같아요. ‘근데 왜 안 바뀌지? 그 누군가는 어디 있지?’ 하고 찾아보면 누군가가 시늉만 하고 있어요. 그걸 보니까 더 못 참겠어요. 왜 시늉만 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이게 하고 있는 거야. 이 정도가 딱 적당해’라고 답해요. ‘적당하다’는 말을 못 견디겠더라고요. 바뀌는 게 없는데 그게 왜 적당하지? 싶고요. 그런 일이 반복되니 손이 뿌리쳐지더라고요.”

배우 정영주가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연기하는 모습. 트리플픽쳐스 제공

하나의 희열을 위한 아홉번의 좌절

―스무살부터 주유소, 과수원, 전통시장에서 일하고 에어로빅 강사, 내레이터 모델 등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오직 배우로만 살지 않았다는 것, 이 점이 배우로서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겁이 없어요. 50여가지의 일을 하고 그 과정에서 이상한 상사도 만나보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겪으며 속된 말로 ‘드루와’ ‘아무거나 와봐. 되든 안 되든 해볼게’ 하는 태도를 얻었어요. 배우라는 직업은 매번 다른 선택지가 주어지고, 새로운 일을 결정하고 겪어내야 하잖아요. 시작에 대해 겁먹지 않는 게 도움이 됐죠.”

―시작을 결정하는 단계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 결과에 어느 정도 초연해야 가능한 일이잖아요.

“열에 아홉은 실패죠. 근데 그 한번의 성공이 안 잊히는 거예요. 한번의 희열이 아홉번의 좌절로 인한 두려움을 이겨내게 해요.”

―하지만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20대 무명의 배우일 때와 무대를 책임지는 28년차의 주연배우로서의 태도가 같을 수는 없지 않나요? 배우라는 일은 근본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외부 평가에 자유로울 수 없기도 하고요.

“배우로서 혼자 반성해야 되는 부분에 대해선 달라지지 않았어요. 반성의 양은 줄지 않았지만 반성의 시간은 짧아졌죠. 말씀대로 이제 저 한 사람으로 시작되고 끝나는 일이 아니잖아요. 이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면서 낙담하고 자책하고 부끄러워하는 건 하루로 끝내요. 그러다 별안간 꿈을 꾸기도 하지만.(웃음) 붙잡고 끙끙 앓아봤자 안 돌아와요. 주변에 동정과 연민을 구한다 한들 그 공기는 저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지 않아요. 동정과 연민의 시선도 길게 가지 않고요. 다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훅 튀어나오기도 해요. 설거지하다가 ‘아우’ 하면서. 그럴 땐 노동해요. 땀 흘리면서 청소하고, 이불 뜯어서 세탁해요. 그러면 조금 개운해져요.”

―자책과 자괴로부터 자신을 방치하지 않는 거죠?

“고여서 썩은 적도 있었어서요. 발가락부터 썩는 느낌이에요. 우울증, 조울증 약 지어 먹고 가족들 못 돌보고 최악으로 가는 거죠. 그것도 연기를 위한 경험이라면 굉장히 괴롭고 사치스러운 경험이고요. 저만 괴로운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니까요. 30대 중반, 아이를 키우기 전과 후가 변화의 분기점 같아요. 미련하게 결과를 붙잡고 있어봤자 썩은 동아줄 잡는 거라는 걸 알았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이혼 후 혼자 살면서 한 3개월을 설거짓거리를 미루고 미루다 결국 욕조에까지 쌓아둔 적이 있어요. 나중에 정신 차리고 보니 영화의 한 장면인가 싶을 정도로 곰팡이가 피어 있던. 거기까지 제가 저를 몰고 간 거예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의 배우 정영주. 드라마 화면 갈무리

대충 살지 않았다는 증거, 연기

―자신을 끝까지 몰고 간 자리에서 무엇이 보이던가요?

“나는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것들이 있어야 하고, 누군가 무언가 필요로 할 때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 사람이란 걸 알았어요. 그래서 빨리 정신 차린 것 같아요. 근데 또 스스로를 방치했던 당시를 망각하거나, 버리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까먹지 마라. 너 그랬었다’ 하고 허벅지 아래 살처럼 몸에 붙여놓는 거예요. 떼려고 애쓰면 더 낭패 보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 이거 내 거야. 근데 이게 내 거여서 다행이야. 혹시 엄마가 알아서 엄마가 자기 거라고 다리에 붙여놓으면 그걸 내가 어떻게 봐?’ 나는 내 꼴만 보면 되잖아요. 그러니 여기 슬쩍 붙여놔야겠다. 근데 그때의 경험이 나를 받쳐줄 때가 있어요. 연기를 하다가 ‘내가 왜 이 감정을 알고 있지?’ 하고 자문하면 지난 경험들 때문에 그렇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아요. 그렇게 ‘나 대충 살지는 않았구나’를 확인할 때가 있어요. 감사하죠. 신기하고 놀라운 배우의 세계.(웃음)”

―삶의 직간접적인 경험들이 더해지면서 성숙하고 발전하기도 하는데요. 특히 배우라는 직업은 그 영향이 연기라는 행위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하죠. 한데 왜 중견 여성 배우들은 비슷한 톤의 한정된 역할들로만 소비되는지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삶을 재현한 드라마, 영화 속 특정 세대에게 주어지는 역할의 한계는 동시에 실제 삶을 살아가는 세대의 한계를 공고히 하는 것만 같고요.

“주어지는 역할의 한계를 생각하다 보면 처음에는 ‘어쩔 수 없지’로 시작해요. 한동안은 내가 문제일까 싶고요. 누군가 의미 있는 자리를 내어주겠지, 누군가가 하겠지를 기다리면 안 되겠더라고요. 아무도 총대 메지 않는 시스템의 문제가 큰 것 같거든요. 근데 그 총대를 왜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지. 그 총은 아무나 멜 수 있는 것조차도 아닌데요. 무엇보다 그 총은 혼자 메는 것도 아니잖아요. 개머리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총구 겨누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방아쇠 당기는 사람도 있어야죠. 2인3각 하듯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내가 문제일까’라고 생각하는 후배들에게는 어떤 말을 해주나요?

““네 탓 아니야. 시대가 너를 못 쫓아와서 그래. 근데 시대가 너를 쫓아와주길 기다리기도 해야 하지만 머물러만 있어도 안 돼. 변화를 위해 뭔가 해야 해. 그렇게 움직이다 보면 시절과 네가 만나게 되는 거야. 너 혼자만 하고 있는 게 아니야. 배우 김선영이 여기 있고, 염혜란이 저기 있어서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이면 이렇게 커지잖아. 여기에 (이)정은 선배까지 와버리면 또 더 커지겠지? 근데 그건 윤여정 선생님이 이만큼 먼저 했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그러니 뭐라도 해야 해”라고 말해요. 공연계도 마찬가지고요. 그 생각으로 뮤지컬 제작을 하겠다고 덤빈 건지도 몰라요. 그 생각이 씨앗이 됐어요. 창작자들이 여성 배우 안 쓴대? 그럼 저 아깝고 훌륭한 배우들이 영혼을 불사를 무대를 우리가 만들자 하고.”

―그렇게 여성 배우 열명이 우르르 등장하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제작자이자 예술감독으로 나섰지요?

“현재 전세계에서 <베르나르다 알바> 공연하고 있는 곳이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처음에 라이선스 해결하려고 고생 많이 했어요. 그 고생 이야기 하다 보면 이 인터뷰 안 끝나요.(웃음) 제작을 잘해줄 만한 동료를 찾아보려고도 했지만 여자 배우 열명이라고 하면 다들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이 작품의 정서를 알지 못하는, 여자 배우들로만 구성된 작품에 대한 이해가 없는 제작자가 이 공연을 올린다고 생각하니까 못 견디겠더라고요.”

―점점 ‘선배 됨’에 대한 고민도 하십니까?

“예능 프로그램 <뜨거운 씽어즈> 촬영할 때 나문희 선생님이 빵을 양손 가득 들고 등장하시며 ‘노래하러 오는 길이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어. 빵들 먹어라, 빵’ 하시거든요. 정말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빵이에요. 너무 좋아요. 막 빵빵거려요. 반대로 연장자의 불평 한마디가 전체 분위기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도 아니까 더 조심하게 되죠. 선배가 될수록 사사로운 일들은 안 본 척 안 들은 척 하되 대신 끝까지 지켜봐주고 기다려주려고 하고요.”

―한 예능 프로그램 제작발표회에서 예정에 없던 노래를 요구받고 ‘하지 않을 책임이 있는 선배’라는 말과 함께 거절하기도 했었죠.

“30대였으면 그렇게 말을 못 했을 수도 있어요. 이제는 어리지도 젊지도 않잖아요. 그러니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해요. 매체 경험이 적은 저는 뮤지컬 배우로서는 국가대표라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선 거예요. 내가 시작하면 나보다 경력 적은 배우는 누구든 와서 노래하게 되는 거잖아요. 일반 관객들이 애써 찾아와주신 자리였다면 노래했을 테지만 그런 자리가 아니었으니까요. 뮤지컬 배우는 준비된 무대에서 노래해야 하고, 여기는 무대가 아니라고 피력했을 뿐인데 후배들이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너의 노래와 능력에 대해서 정당하게 값을 치르는 곳이 아니라면 너도 스스로를 함부로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의미 있고 좋은 자리에서 무상으로 하는 것과는 다르죠.”

사진 윤송이 작가

무대 위 배우로 산다는 건

―무대 위에서 많은 이들과 특수한 협업 관계를 이어오며 타인을 대하는 태도 역시 성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요?

“살아가면서 그 어떤 관계보다 배우와 스태프들과의 관계가 삶에서 가장 크게 자리했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잖아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할 때 주인공 ‘빌리’와 제 아이가 비슷한 또래였는데 아이와 있던 시간보다 빌리와 있던 시간이 더 많았어요. 지금도 미안한 일이죠. 무대 위에서 공동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목적을 수단 삼아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이들이 있어요. 비상식적인 거예요.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보여요. 결국 생채기가 나고 누군가 상처받고 떠나요. 좋아해서 선택한 일이지만 결국 사람에게 치이고 떠나는 걸 볼 때 붙잡지 못했어요. 버티고 이겨내라는 소리를 못했어요. 그 친구 잘못이 아니니까요. 어느 순간부터는 누구 한명 허투루 대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무대 뒤로 퇴장할 때 내 발밑에 빛을 비춰주는 막내 이름을 외울 수밖에 없어요. 그 순간 ‘도윤아, 점심 먹었니? 뭐 먹었니?’ 물으면, ‘제육볶음이요’ 하고 답한단 말이에요. ‘어디냐. 맛있는 데 알려줘라’ 하면 그 사사로운 대화 속에서 랜턴을 비춰주는 순간이 헛되지 않게 된다고 믿어요.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에는 배우 얼굴 아래 반사판을 대는 막내 스태프가 있어요. 그 친구는 나를 위해서 하루 종일 제 얼굴만 보는 사람이잖아요. 고맙죠. 저도 드라마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 모르는 게 많으니까 서로 의지해요. 그 친구에게 ‘나 아까 뭐 실수했냐?’ 하고 묻고, ‘아니에요. 제가 실수한 거예요’ 하면 ‘실수하지 마라. 나도 안 할 거다’ 하며.”

―마무리할까요.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곧 한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라고도 하죠. 한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탐구하는 배우라는 직업적 속성이 본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 같나요?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이 세상에 함부로 이름 지어진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죠. 어떤 존재도 한 단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쳐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요. 배우라는 직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스쳐가는 인연이든 사건이든 담아둘 수밖에 없어요. 덕분에 삶의 순간순간, 찰나에 부딪히는 것들을 더 들여다보고 귀 기울이고 마음에 담을 수 있도록 방법을 조금이나마 터득하게 해요. 그게 실제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요. 한 사람과 그 사람의 온전한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과정이 매번 어렵고 힘들지만 기분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으로 계속 배우를 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배우 정영주는? 1994년 뮤지컬로 시작해 <브로드웨이 42번가> <레베카> <팬텀> <베르나르다 알바> 등의 무대에 올랐으며, 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 <열혈사제> <나의 아저씨> <사내 맞선> 등에 출연하며 대중과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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